brunch

행복의 끝판왕

by 삽질

아이를 낳는다는 건 현대사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아이를 낳는 비용, 아이를 키우는 비용, 아이로 인해 내 삶에서 사라지는 기회비용처럼 아이는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애물단지로 여겨지곤 합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효율적인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죠.


인간이라면, 동물이라면 출산과 육아 그리고 종족 번식은 자연계에서 무척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하는 과정입니다. 인간이 갖는 본능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낳는 건 행복의 관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다 보면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고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행복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시대에 따라, 연령에 따라 추구하는 행복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애를 돌이켜봐도 제가 정의했던 행복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랐습니다. 행복의 크기를 정량화할 순 없지만 굳이 정량화를 해보자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고 있는 지금 느끼는 행복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크기뿐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빈도, 깊이 그리고 만족감에서도 월등합니다.


아이는 참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절반씩 닮은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저를 미소를 짓게 합니다. 저희 부부가 원했던 색깔이 아이에게 조금씩 입혀지고, 저희와 결이 비슷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자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운전을 하다가도 백미러로 아이를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고 충만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냥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특별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전 아이들에게 특별한 감정이나 애정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저 같은 놈이 초등 교사를 한다는 걸 못 미더워했고, 심지어 냉혈한이라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총각 시절 아이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골칫거리 정도로 여겼던 제가 자식에게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하던데, 부모가 갖는 자식을 향한 본능적인 사랑처럼 맹목적인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행'운'입니다. 확률적으로 많은 부모가 저처럼 아이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움의 의미는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로 인해 불행함을 느끼고, 극단적이지만 아이가 짐이 되어 아이를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경험하는 지금의 감정과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둘째를 두 번이나 유산하면서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제가 가진 게 얼마나 소중한지 겸손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IMG%EF%BC%BF4311.jpg?type=w966


오늘 가족들과 천안 독립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두 세대 정도 앞서 살았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인생의 칼날 위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을 것입니다. 행복의 추구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의 생존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평화, 안정, 여유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더 넓은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보다 가져야 할 것만 보는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생존을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삶을, 그것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꾸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아이로 인해 제 삶의 최고의 행복을 맛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우리 가족이 건강함에 감사합니다.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나머진 그저 여유분일 뿐입니다.




keyword
삽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