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일 월요일 아침. 나는 정확히 세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옆지기가 출근한 후 나도 나갈 채비를 하려 일어나는 순간! 아뿔싸- 또 시작됐구나. 온 세상이 핑그르르 회전하는 그 증세. 저혈압 증세라고도, 이석증이라고도, 메니에르라고도 불리는 그 지독한 어지럼증이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것이었다. 어쩐지. 남편의 집요한 모닝키스 세례에도 좀처럼 잠 깨지 못할 때부터 싸하더라니...
모든 각설이가 그렇듯, 이 ‘녀석’도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너무 불쑥이면 저도 미안하긴 한 모양인지, 그나마 이맘때쯤 오는 걸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중이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쯤 올 테니 마음 준비 단단히 하고 살라구.
두 번째 어지럼증으로 죽다 살아났을 때, 녀석이 떠나며 남긴 말이었다. 몇 달 뒤일지, 몇 년 뒤일지는 알려주지 않은 터라 처음에는 노심초사했지만, 망각의 강을 건너고 나니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방심하고 살게 되더라.
간헐적 현기증으로 가끔 뜨끔하긴 했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어서 아, 이젠 볼 일 없나 보다- 하고 마음 줄 놓고 살 때쯤, 녀석은 또다시 내 생명 줄을 위협하며 불시 검문에 나선 것이다.
불청객의 강력한 존재감에 압도된 채, 나는 처음 자세 그대로 다시 누웠다. 문자 그대로 ‘몸져누워’ 버렸다.
세상이 돌 때는 꼼짝 말 것!
사람 잡는 자전과 공전이 멈출 때까지
돌아누울 생각조차 말고 쥐 죽은 듯 정자세로 누워있을 것!!
이게 경험으로 터득한 가장 확실한 초기 대응법이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요동치는 세상에 맞섰다간 진짜 세상등지는 수가 있음을 요단강 앞에 두 번 서보고 나서야 꺠달은 거다.
그래, 모든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키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하지. 기특도 해라. 몇 년 새 몰라보게 의연해진 내 태도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써든데쓰 리허설 타임을 어찌 알차게 보낼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 이 징글맞은 대문자 J성향! 지긋지긋도 하여라.’ - 중얼대면서 말이다.
어젯밤 머리맡에 적어둔 오늘의 할 일은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그 말인즉슨, 일처리가 끝날 때마다 지워나가는 카타르시스 또한 느끼지 못할 거란 뜻. 이거야말로 진짜 죽을 맛이다. 모든 항목이 소거된 to-do list의 짜릿한 여백미, 그거 하나 맛보자고 온종일 미친 듯 달리는 건데 그걸 못하다니- 어지럼증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렷다!!... 알 턱이 있나. 알면 오지도 않았겠지. 알면서도 왔으면 진짜 염치없는 거고.
개념이 없거나 염치가 없는 가을 손님과 동침한 채, 나는 꺼져 들어가는 의식을 붙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야 해, 생각을 멈추면 호흡까지 멈출지도 몰라, 그러니 정신 단디 차려.
“무슨 호흡씩이나 멈춰. 참 오버한다!”
- 라고 생각할 독자님들도 계실테지. 그런 분들을 위해 한 말씀 올리자면...
- 나: “독자님- 독자님께서 직접 겪어 보지 않아 모르시나 본데, 정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다니깐요?”
- 독자: “아니, 그 정도로 위급하면 전화를 거세요. 가족이든, 친구든, 하다못해 119에라도 SOS를 치라구요. 빨리 병원 가면 죽네 사네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사서 고생하실까?”
- 나: “그건 말이죠... 눈만 떠도 어지러워서요. 어지러우면 메스꺼워서요. 메스꺼우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어나야 하잖아요. 일어나면 눈 뜰 때보다 더 어지럽거든요. 더 어지러우면 더더 메스껍거든요. 그럼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데, 달려가다간 균형 못 잡고 넘어지거든요. 넘어지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거든요. 아/시/겠/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방어한다.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몹쓸 가을 손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기 때문인 거라며- 자/기/위/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