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의 나는 누구였을까

텔레마케터

by 박나킨


얼마 전, 유재석 유튜브 '핑계고'에 윤경호가 나온 영상을 봤다.

그가 텔레마케터 알바 시절 이야기를 풀자, 댓글 창은 폭소로 가득했다.


"웃을 일이 없었는데 덕분에 너무 재밌게 웃었다."
"하루 스트레스가 풀린다."

다들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윤경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첫날,

선배가 시범을 보인다.

고객이 욕을 한다.

고객은 계속 욕하는 중이지만, 선배는 계속 멘트 시범을 보인다.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마무리를 한다.

전화를 끊는다.

선배 왈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윤경호는 결국 욕을 참지 못하고 반나절 만에 도망을 나왔다.

하하하하하.


나도 웃었다.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때의 나도 욕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댓글을 달았다.

[저도 텔레마케터로 일했었는데, 전화를 받으시자마자 욕을 하셔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직도 폰 공포증 때문에 전화받는 것, 거는 것 모두 힘들어하고 있답니다.]


곧 대댓글이 달렸다.

[매일 같이 오는 보험, 통신사, 광고 전화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나는 내 댓글을 삭제했다.

왜인지 모르게, 내 말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도, 보이스피싱 전화나 광고 문자 때문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가 반갑지 않은 마음은, 어느 쪽에 서 있든 비슷하니까.


그때,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이었다.

전화는 본래 서로를 연결하기 위한 도구지만,

때로는 서로를 방어하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는 손가락,

거는 전화를 망설이는 손목,

둘 다 같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50평 남짓한 회색빛 사무실

창문은 늘 닫혀 있고, 형광등은 백색의 빛을 쏟아낸다.

독서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책상들,

칸막이에는 스크립트 종이와 노란색 포스트잇이 겹겹이 붙어 있다.

누군가는 그걸 '전투 준비물'이라고 불렀다.


아침 9시 정각,

로봇같이 정확하고 똑같은 동작으로 일제히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동시에 같은 문장을 읊조리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ㅇㅇㅇ고객님 맞으시죠, 네 저희는 ㅇㅇㅇ텔레콤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목소리의 톤까지, 쉼표의 길이까지 표준화된 대사.

여기서의 감정은 오히려 실적에 방해가 됐다.


나는 전화를 걸기 전, 늘 같은 주문을 속으로 되뇌었다.

'받지 말아라, 받지 말아라.'

아마 받는 사람도 같은 주문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같은 소망을 빌었다.


스크립트는 늘 같았다.

그날 새로 나온 상품과 패키지만 바뀌었을 뿐,

상대방의 '네, 네, 네'만 끌어내면 되는

구조와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DB를 띄우고, 헤드셋을 끼우고,

눈과 귀의 목소리를 하루 종일 기계에 맡긴다.


열 통 중 여섯 통은 받지 않았다.

두 통은 "바빠서요"라며 바로 끊겼고,

한 통은 욕이었다.

남은 한 통이 내가 살아남을 이유였다.

그 한 통을 위해 백 통, 이백 통을 걸었다.


그 숫자는 버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버티라는 사실만, 그것만 반복해서 새겨줄 뿐이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나 결국은 거절했다.

거절을 들을 때면, 전화 건 사람의 숨이 잠시 멈칫한다.

그 짧은 공백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애써 그 긴 스크립트를 다 읽었는데,

실적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훈련된 미소를 목소리에 다시 담아야 하는 의무,

그리고 사라진 가능성 위에 남겨진, 묘한 공허함과 홀가분함.


끝까지 듣고 거절하는 것이 친절이라고 믿었던 것이었다.

받지 않는 것, 혹은 빠른 거절이 또한 친절일 수도 있겠구나를 깨달았다.


전화기 너머의 나와 내가 모두 불편한 순간.

전화기 밖의 너와 내가 모두 소중한 존재.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한 채

나는 매일 같은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어떤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에게 그것은 생존 수단이었고, 일이었기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최선이라는 말이 때로는 자기 위안이자

다음 날을 버티게 하는 주문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실패할까.

그 질문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고,

하루가 끝나면 굳이 답을 세어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것은 항상 충분했고,

항상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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