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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Jan 29. 2024

나 홀로 물떼새

marked lapwing

저에게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어요.

안녕 반가운 여러분!

길 가다 새가 나오면 쫓아가요. 동영상과 사진 모두 찍어가면서. 그들의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라오는 저를 보는 듯한 그 눈짓과 걸음이 웃겨요. 전에는 새가 보이면 무덤덤했는데 이 연재를 시작한 지난 몇 주간 제게 그들은 달라졌어요. 길에 웬 새야-가 아니라 장난을 걸고 싶은 정다움이 생겼달까요.

오늘도 새 따라가기

요즘 브리즈번은 그야말로 우기 한껏 무더위에 사이클론까지 주말엔 지붕이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무섭도록 몰아치는 빗줄기에도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갠 하늘에 쨍쨍한 해. 새들도 비가 오면 숨을 죽이고 어디선가 비를 피하고 있겠죠? 오늘 저녁 창밖이 조용하다 싶으면 깊은 밤 그렇게 무거운 비가 내리는 것이고요. 아침이 조용하다 싶으면 오전에도 주룩주룩 비가 올 거라는 얘기죠. 그들은 하늘을 읽고 나서야 노래를 불러요.


오늘 정말 후덥지근 종일 더웠어요. 오랜만에 밖을 걷는데 스프레이를 뿌리는 듯한 비가 오기 시작해요. 갑작스러운 비에 까마귀들 까치들 마당의 단골손님 따오기도 다를 비를 피해 걸어요. 그렇죠. 호주의 새들은 잘 뛰지 않아요. 언제나 늘진한 걸음으로 사박사박 풀밭 위를 걸어요. No worries를 외치는 호주 사람들처럼 새들도 여유가 있는 걸까요. 잠깐, 새는 날아야 하는 거라고. 아니에요. 여기의 그들은 걸어요.


코너를 돌아 보이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 노란색 마스크를 달고 있는 가면 물떼새가 보입니다. 까마귀까치따오기 시리즈가 좀 덩치 큰 새들이라면, 노란색이 눈에 띄는 이 가면 물떼새와 노이지 마이너는 자그마하고 다리도 가는 새들이에요. 작아서 그렇지 사실 동네 곳곳에서 많이 보이는 그들.


먼저 노이지 마이너(Noisy minor)는 이름처럼 지지배배 시끄럽게 끊임없이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해요. 동네 곳곳에 노란 부리 저 새 많구나 싶더니 호주 동부와 남동부인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스에 많이 서식한다고 합니다. 유칼립투스 숲에서 많이 서식한다더니 코알라처럼 유칼립투스를 좋아하는 호주 토박이 새라고 볼 수 있겠죠? 초등학교 꼬마들도 "저기 노이지 마이너다 저기 좀 봐!" 하는 것을 길에서 들을 수 있어요. 까마귀가 혼자 우두커니 다니는 것에 비해 작은 이들은 여럿이 함께 있는 모습이 많아요. 회색빛 깃털에 자그마한 체구인데 부리가 노란색이라 눈에 띄죠. 작은 발로 가만히 서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이에요.



오늘의 주인공 가면 물떼새는 역시나 노이지 마이너처럼 부리가 노랗지만 얼굴에 노란 수건을 덮은 듯해요. 그 수건이 부리와 얼굴을 덮고 댕그렁 내려와 있는 느낌이랄까. 두 종류의 새 모두 짙은 색 몸에 노란빛이 눈에 띄지만, 물떼새는 그 노랑이 더 넓고 길게 늘어져 있어서 더욱 눈에 띕니다. 몸통도 온통 회색인 마이너에 비해 흰 털도 있고 특히, 다리가 길어요. 저러다 부러지면 어쩌나 할 정도로 매우 가늘죠. 다른 새에 비해 기다란 다리로 총총총 도로 위를 걸어가면 금세 넘어질 듯해요. 늘어진 마스크와 긴 다리, 원주민들이 노란 창을 가진 새라고 했다네요. 그럴 만도 한 게 정말 노란 마스크가 잔디밭이든 전깃줄이든 눈에 확 띈답니다.


물때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들은 물이 아닌 땅에 살아요. 안 그래도 오늘 갑작스러운 비에 총총총 걸어가던 물새떼, 저쪽에서 오던 차에 치일까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 와중에도 유심히 보이는 것은 다리고요. 길게 구부러진 다리를 하나 두울 바꾸면서 한 다리로 서서 힐끔 저를 보는 모습. 흔들림이 없어 보이려는 새침데기의 자태 같았어요. 알이 부화하면 침입자를 쫒으려 날개가 부러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설명에서는, 마치 '얼음'이 된 듯한 그들의 표정이 딱 맞아요. 졸졸 따라가는 저를 향해 멈춰 선 그들의 음-하는 콧대 아니 부리 세운 얼굴이요. 나 없다, 너는 뭐냐, 저리 가지?라는 표정의 말로 나를 곁눈질하는 새.




호주의 새들은 사람 기척에도 푸드득 날아가지 않고 새를 보는 저처럼 저를 보고 있어요. 가만히 걷고 멀리 내다보고 제가 그쪽으로 가면 저리로 가버리고 제가 다른 쪽으로 가면 꼿꼿이 있어요. 내가 여기이니 네가 가라 그리로- 그런 자신감, 계속해서 사람 아니고 새 이야기에요. 가끔은 동네 주인이 새 같아요.


지난한 비의 날들로 문 앞에 나서면 온통 지렁이 바닥이에요. 우리가 으악할 틈도 없이 젖었다 말랐다 비틀어져버린 것들. 그렇게 지렁이도 벌레도 온 동네 풀밭에 많고 새들은 눈치 보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고 그 땅들을 누비며 누려요. 벌레도 먹고 산책도 하고 지붕에 날아올랐다가 푸드득 또 옆집으로 걸어갑니다. 가늘고 긴 초록뱀들은 쥐나 벌레를 잡아먹고, 쿠카부라나 커다란 새들은 지렁이나 뱀을 잡아먹어요. 파리나 바퀴벌레나 개미들도 총총히 집안팎을 누비고 있고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내쫓다가도 또한 내일 또 보며 같이 살 거에요.


그렇게 호주 브리즈번에서 새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그마하니 더더욱 잘 보이려 노랑 부리와 마스크로 우리를 맞이하는 그들, 내일도 쫓으려 하지 않고 따라서 걸어보겠습니다. 가만가만 늘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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