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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Feb 12. 2024

날아간 회색앵무

african grey parrot

아, 저기 새가 날아간.. 다


엄마 팔에 안겨있던 똘이는 그렇게 아파트 계단 창문으로 날아갔어요. 제가 대학생 때 우리가 그 5층 아파트에 살 때였죠. 한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늘 우리집 방바닥을 걸어 다니던 회색앵무는 힘껏 날았어요.




그 해 여름 저는 호주에 있었어요. 2002 월드컵이 끝난 한국의 열기가 식지 않았을 때, 제가 온 골드 코스트는 너무나 조용했어요. 마치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어? 싶을 정도로요. 빨간색 붉은 악마 티셔츠를 챙겨 온 제가 좀 멋쩍을 정도였어요. 한국에서 한 달 가까이 열광 속에 있었던  머릿속에는 아직도 붉은 물결이 가득했거든요. 미디어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본 외신기자들과 강남대로를 꽉 채운 사람들 그렇게 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곳에서 막 도착한 브리즈번 그리고 골드 코스트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어요.


그 조용한 도로에는 오직 새들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아마 20년 전 그때에도 저는 아버지를 생각했을 거에요. 제가 아주아주 어릴 적부터 새를 키우셨던 아버지 덕분에 그래도 이런저런 새들을 알고 고 같이 자라곤 했죠. 그런데 여기 호주는 세상에, 온 동네에 그 새들이 널려 있었어요. 처음엔 새장에서나 보던 새들이라 좀 무서웠던 것 같아요. 아니 이렇게 새들이 막 풀어져 있어도 되나? 이러면서요. 새들은 이렇게 새장 밖에서 살아야 하는데 어디든 날고 걸어가면서.


하늘이 새들의 집 천장이었고 끝없이 늘어진 풀밭은 그들의 온난한 바닥이었어요.


내가 걷는 길 위에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있고 저기 동네와 길 위를 편히 노니는 수많은 새들이 있고. 아버지께 그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이걸 보시면 참 행복하시겠다. 그 새들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실텐데. 새를 바라볼 때 아버지의 표정은 꿈꾸는 사람의 얼굴이에요. 그 애틋한 새들을 편히 해주시고자 새장은 더 큰 새장으로 새방으로 커진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회색빛 몸에 핑크 머리의 호주 앵무새인 갈라(Galah)

무엇보다 회색의 앵무를 보자 놀라 설 수밖에 없었죠. 아, 저것은 우리집에 있는 그 회색앵무랑 비슷하다.

 

새들의 고향 호주에서 한국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집의 회색앵무가 반겨주지 않았어요. 저를요. 보기만 하쪼아대려고 달려들었죠. 아니, 나는 너와 같은 앵무들의 나라 호주에서 너의 친구들을 행복하게 바라봐주며 살았다고. 나라고. 그러지 말라고- 집에만 들어가면 회색앵무 똘이를 피해 방으로 피하기 바빴어요.

아하- 저는 호주에 동생은 군대에 있는 동안, 이 새가 쓸쓸한 엄마 아버지의 기쁨이고 재롱이었구나. 실제 이 새 똘이는 작은 인형만 한데 새이지만 날지 않고(실제 어릴 적부터 애완용으로 키워져 날 줄 모른다고 들었어요) 방바닥이며 거실을 걸어 다녔어요. 물을 주면 물그릇에 얼굴을 박고 물을 마시고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 자기도 달라는 듯 낑낑거리고. 역시나 똘이는 저를 안 좋아했어요. 부모님의 사랑을 한눈에 받다 경쟁자를 만난,


그 새의 눈총을 받으면서, 부리로 콕! 을 피하면서, 보았어요. 부모님께 사랑받고자 다가가고 곁에 있고 말을 하고(실제 이 회색앵무는 처음 왔을 때 아버지가 제가 만든 녹음테이프를 계속 틀어주셔서 "안녕" "반가워" "나는 똘이야"를 할 줄 알았죠) 지 일에 바빠 부모님은 뒷전인 딸인 저보다 나은 것 같았어요. 그래 네가 우리들의 빈자리를 채웠구나. 그렇게 저도 호주에서 보던 새를 여기서 본다 하면서.


그날은 날이 분명 흐렸을 거에요. 어쩜 강아지처럼 새라면서 아버지가 1층 주차장에 차를 세우신 걸 기가 막히게 아는지. 똘이는 왔다 갔다 난리였어요. 세상에 여긴 5층이라고. 아버지가 계단을 밟고 올라오시는 소리가 들리자 똘이는 더 난리에요. 어쩌면 좋아의 표정으로. "똘이야, 나갈래? 아빠 오시나 볼까?" 엄마는 똘이를 안고 두터운 현관문을 여셨습니다. 그 순간,



정면의 커다란 복도 창문이 그날따라 활짝 열려 있었어요. 비가 들이칠까 닫기도 하는데 그날은 어쩜 그렇게 온통 열려 있었을까. 똘이는 마치 결심이나 했다는 듯, 한 순간에 날아올랐습니다. 현관문 앞에 선 엄마도, 집안에서 일어나던 저도, 계단을 오르던 아빠도, 모두 보았어요. 그 커다란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회색앵무 한 마리를요. 똘이는 온 힘을 다해 그 창문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잠시 저는 금방 찾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리로 나갔고 멀지 날지 못했으니 찾을 수 있을 거다. 우리 셋은 계단을 돌고 돌아 아파트 밖 주차장으로 뛰었습니다. 이쪽을 저쪽을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 아파트는 작은 개천이 흐르는 둑방 바로 옆이었는데, 부모님은 그 둑방의 젖은 풀숲을 오래도록 찾아다니셨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거든요. 주차장에도 둑방에도 개천에도 풀숲에도, 똘이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리고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어요.


철없는 저는 그게 얼마짜리 새인데 라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부모님은 불쌍한 새가 어디 가서 추운 날씨에 날개는 젖어 죽어가고 있을까 봐 애처롭고 안쓰럽고 가슴 아파하셨죠. 알 수 있었어요. 두 분은 동물을 진심으로 아끼시고 마음을 주시는구나. 내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은 원래 알고 있었지만 그때 더 분명히 느끼고 보았던 것 같아요. 우리집에 있던 그 수많은 개와 물고기와 새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던 두 분, 그중에서도 자식들이 없던 시간 두 분께 삶의 기쁨을 주었던 똘이의 부재는 두 분께 한참의 애잔함을 주었습니다.


회색앵무 똘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죽지 않았기를 어딘가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어요.


그래도 자연으로 돌아가면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우리집은 호주가 아니니까요. 그런 환경 그런 도로 그런 시선이 아닐 테니까요. 새들에게 새들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이 우리는 어디에 가지고 있을까 오래도록 생각했어요. 한동안 아버지를 새를 키우지 못하셨습니다.


어느 날, 티브이에 똘이와 같은 새가 나왔어요. 그 새가 말을 하고 재주를 넘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돈을 던져주는 모습, 똘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우길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렇게 똘이와 같은 새는 또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새만이 아닐 거에요. 수많은 똘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겠죠.


아버지는 지금 새를 키우지 않으십니다. 한편 다행스러워요. 진심으로 동물들을 아끼고 보살피신 아버지이시지만 그 새들의 집이 호주라면 호주에 있기를, 어디선가 배를 타고 실려오지 않기를 바라요. 그래서 아버지도 이번에 호주에 오셔서 그렇게 좋아하신 거죠. 자연 속에서 그들의 집에서 편히 울고 마구 걷고 이리저리 제 집처럼 호주땅을 누비는 새들의 모습을요. 하지만 잊지 않으려 합니다. 부모님의 곁에서 애교와 사랑으로 외로움을 채워준 그 새의 기특함을요. 고마워 똘이야!


호주에서 똘이를 봅니다. 회색빛 깃털에 붉은 꼬리 분명한 눈동자. 새라지만 그 새에게서도 우리는 사랑을, 온도를,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영특하고 똑똑한 새 한 마리, 그렇게 동물에게서 사랑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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