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가득한 신입사원 때에는 입사만 하면 내가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나는 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이며, 이 회사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직원이 되어 승승장구하여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안타깝게도 이 허상이 깨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사회의 섭리를 이해하고, 생태의 법칙을 깨닫고, 조직의 소모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자 삶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사회에서의 내 쓸모가 대단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꽤나 쓰라린 과정이었다.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자발적 이직은 아니었으나 스카우트도 아니었다. 어떤 (아마도 정치적인) 파도의 흐름을 타고 계열사 중 하나로 옮겨가게 되었다. 10배 정도 큰 조직, 더 큰 기업으로 옮겨졌기에 누군가는 택출 받은 것이라고 하였으나, 애초에 내가 지원한 곳이 아니었다. 최종 선발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취준생 시절 지원조차 하지 않았던 회사였다. 나는 첫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공채 신입사원으로 뽑혔으며 몇 년간의 수련과정을 거쳐 일 시키기 딱 좋은 대리가 되었으므로 회사에서 나의 쓸모를 인정할 줄 알았다. 저쪽에서 선택받았다는 기쁨보다 이쪽에서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이 더 컸다.
발령받은 부서는 다름 아닌 현장. 전혀 새로운 업무였다. 하달받은 업무를 위해 협의를 하는 데 한 팀장님이 뒤에서 내용을 가만히 듣더니 거침없이 내뱉었다. '최대리도 전달받은 업무인 건 아는데 말이야. 야, 말로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 공사가 장난이냐, 씨발.' 근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놀라웠다. 업무 중에 씨발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꽂히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욕이 난무하는 일터에 와 있구나.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났다. 다행히 눈물을 보이기 전에 말없이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서 말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곳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일이 곧 나였고, 내가 곧 일 그 자체였다. 다시 돌아갈 곳도 없고, 고용형태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회사가 나를 책임질 거라는 기대를 접었다. 그저 이 현장이 이 회사에서 내 마지막인 것처럼 일했다. 내 거취의 보장을 위해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접었기에 맘 편히 오로지 일만 했다.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없었기에 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자유로웠지만, 일에 관한 한 빈틈이 없기를 바랐기에 다소 거친 태도로 임했다. 보이는 욕도 보이지 않는 욕도 난무했던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오로지 나 스스로에 대한 쓸모, 일터에서 쓸만한 가치를 찾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처음 발령받을 때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으나, 현장이 끝날 무렵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직원 중 한 명이 되었다. 마지막 회식자리에서는 수고했다며 박수도 받았다. 막상 쓸모를 인정받으니 쑥스러웠다. 다행히도 최선을 다 한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그뿐이면 되었다. 대단한 승진도, 급여 보상도 전혀 바라지 않았다. (실제로 주어지지도 않았고.) 모든 순간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의미 있었고, 그 순간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내가 있다. 조직에서 나의 쓸모를 늘 찾아 헤매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찾기에 앞서 내가 어떤 용도로 소모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일터에서 스스로 소모품이 되고자 한다. 아 그래, 내가 물건은 아니니 소모인 정도로 해 두자. 다른 이익을 바라지 않고 일 자체만을 생각하며 일터에서 나의 쓰임새를 찾는 것. 나는 그것만이 일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가치라고 여기고 있다.
아, 일은 연봉과 비례해야 한다고? 일정 부분 맞는 말이지만, 정비례하지는 않다. 돈과 재화는 별개로 개인에게 부여된 운과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초에 내가 이 회사와 연이 닿은 것도 운이고, 누군가에게는 혜택처럼 느껴질 나의 상황을 같은 소속의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서 박탈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에 안착한 것만으로도 돈을 버는 일로써의 역할은 다했다. 그다음은 나의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 있어, 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여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 복직했다. 28개월의 휴직기간 동안 2인 가족에서 4인 가족으로 변모했다. 나만 바라보는 두 꼬물이가 생겼고, 이들은 당연히 내 인생의 제일 꼭대기에 앉아 있다. 예전처럼 일할 수는 없다. '일이 곧 나는 아니다. 일은 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적당히 하자. 적당히만 해도 된다.'라고 매일같이 되뇐다. 그럼에도 막상 복직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을 저 끝까지 행사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무조건 많은 일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정도의 연륜은 쌓였으므로, 적당한 낄낄 빠빠를 위해 노력 중이다.
복직 이후 나의 쓸모를 내세울 수 있는 세련된 언어를 발견했다. '조력자'. 나는 직장에서 만인의 조력자가 되고자 한다. 상사를 돕는 사람, 후배를 돕는 선배, 협력업체의 업무 진행을 위해 돕는 담당자, 등등. 나 스스로를 조력자로 인식해버리면 회사에서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은 나에게 일을 시키는 자들이 아니라 내가 도와야 하는 사람들이 된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상황은 바뀌지 않으나 내 인식을 바꾸려는 나만의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조력자의 마음가짐으로 무장하며 업무전화 업무상 통화를 하면서 자주 물어본다.
"제가 oo님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