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작은 아버지께서 회사 청원휴가 증빙자료로 필요할지 모른다며 건네신 문서의 제목에 '시체검안서'라고 쓰여있더라. 나에게는 일평생 나의 가족으로 계셨던 분인데, 제3자에게는 그저 하얀 천으로 뒤 덮인 시체일 뿐인 거지. 그 단어에는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할머니가 없었어. 그저 일적으로 분류해야 할 주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이 서류를 누가 작성했을까. 아마도 아버지께서 늘 모시고 가던 병원의 한 의사였을 거야. 병원에는 새벽에 도착했으니, 그날 당직을 서던 누군가. 그에게도 애도의 마음이 있었겠지. 그래도 그에게 이 서류는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업무 중 하나에 더 가까웠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할머니의 죽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더라고. 시체라는 표현이 맞아. 사실 맞지.
할머니도 내 나이 언저리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으셨을 거야. '아이고 머리야' 하며 손을 올리고, '아이고 깜짝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어떤 사건들. 그러나 마지막에는 제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거든. 할머니가 대단한 분이셔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결국 그렇게 될 거야.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와 보니,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회사에 이렇게 목맬 필요가 있나. 어차피 크고 나면 제 살길 찾아갈 아들들에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있나.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가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진짜 내 삶에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모든 것을 놓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 있지.
허무감. 이 세상이 허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안 허무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나 봐. 소중한 이의 죽음에 이리도 허탈한 감정이 드는 걸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어. 아직 삶에 대한 어떤 끈을 붙잡고 있나 봐. 놓았다고 하면 감정이 이렇게 휘청일 수 없는 거거든.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지. 이왕 사는 거 즐겁게 살아야지. 내 이 비루한 몸뚱이도 힘든 삶의 무게를 진 흰 가운 입은 누군가에게 하나의 시체로 여겨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 나는 여기에 있으니 여기 있는 이 순간만큼은 미소 지어야지. 하고 두 똥쟁이들이랑 장례식장에서 엄청 시끄럽게 놀았어. 할머니도 그걸 바라지 않으실까 하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