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리던 추위가 사라지고, 봉오리가 움트는 계절이 돌아왔어. 나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출근길 어둠의 양을 보며 주로 느껴. 요즘은 문 밖을 나서면 아주 깜깜하지 않고 동이 트기 시작했더라고. 어? 깜깜하지 않네, 그러고 보니 3월이구나. 하고.
나는 6시 20분경, 신랑은 6시 50분경 집을 나서는데, 나의 복직과 동시에 엄마도 우리 집으로 출근이 시작되셨어. 4살, 3살 두 꼬물이들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위해서 말야. 처음에는 신랑 나서는 시간즈음 오셔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안되더라고. 애들이 6시부터 깨는 통에 아직 깨지 못한 와중에 울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출근준비를 하지 못하겠던데? 자연히 엄마는 내가 나가야 하는 시간즈음 도착하게 해 주시지. 어쩔 때는 마주치고 어쩔 때는 내가 먼저 나가기도 해.
오늘은 문을 나서며 아가들 중 누가 깨어있는지 엄마에게 톡으로 알렸더니, 거의 도착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걸어가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아파트 입구에, 택시에서 내린 엄마가 나를 향해 양팔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라고. 매일 보는 엄마인데도 괜히 반가워 나도 양팔을 흔들어 화답했어.
다시 뒤돌아 걸음을 옮기는데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오르더라. 고3 때 도시락을 싸서 다녔거든. 가끔 엄마도 나도 늦게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지 못하는 날이면 엄마가 쉬는 시간에 갖다 주시곤 했어. 내 기억에 우리 반은 건물의 2층 오른쪽 끝이었고, 학교 정문은 건물 왼쪽 너머 있었는데, 엄마가 온다는 시간이 쉬는 시간즈음일 경우 창문으로 엄마가 오는지 살피곤 했어. 하루는 몸을 쭉 빼고 창문으로 엄마를 살피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던 엄마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한 손을 흔들며 들어오는 거지.
오늘 아침에 양손을 흔들며 딸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모습이, 창틀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던 그 모습과 겹쳐졌어. 그런 날은 분명히 아침에 엄마를 봤는데도 너무 반가워서 교문 쪽으로 뛰어가 도시락을 받아왔어. 반가웠다는 것이 무색하게 채어가듯 가지고 바로 교실로 돌아오곤 했지만.
그러고 보면 별로 특별한 날이랄 것도 없는 일상이었지. 그런 일상의 한 장면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네. 버스정류장으로 걸으면서 특별한 날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일상의 힘을 새삼 깨달았어. 무심코 지나치는 오늘 하루에서도 우리가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언젠가 그 따뜻한 기억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