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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식이 만든 대화, 직장 내 숨겨진 경제적 현실"

by 허당 언니




한 달에 한 번씩 팀장님들과 회식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친목을 도모하지 못했는데,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매출이 나오고, 내 입지도 안정적이다 싶어서 이제는 팀장급들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격려 차원에서 시작된 자리였는데, 술이 한두 잔 들어가니 조 팀장이 얘기를 꺼냈다.


“부문장님, 직원들이 부문장님께 인사를 해도 인사를 안 받으신다고, ㅎㅎㅎ 해서요. 왜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거 하드라구요. 인사를 했는데 아는 척을 안 해요. 얼마나 민망했다고, 다른 부문 사람들도 다 있는데요. 그렇다고 부문장님이 옆으로 지나가는데 생 깔 수도 없잖아요. ㅎㅎㅎ”


내가 인사를 안 받는 것을 눈치 챘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의 행동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직원이 일을 잘하면 내가 잘 받지. 일도 개뿔도 못하면서, 나하고 친해져서 아부만 떨고 있는 거잖아.”


“요즘 직원들이, 우리 때하고 같은가요? 할 말 다 하죠.”


“그러니까, 조 팀장이 매니지먼트를 잘해야지. 다들 기어오르지 않게.”


“네, 제가 다 잡고 있습니다.”


“도 과장은? 차 대리는? 김 대리는?”


“도 과장은 이번에도 성과 다 달성했고, 거의 휴가 안 쓰고, 정말 집에 베이비시터가 이상이 없는 한, 그것도 장애아 치료 다니면서 돌싱인데, 오죽하겠어요. 여자가 독해서 그렇지, 겉으로 표시는 안 하는데, 부문장님. 이번에도 연간 계약도 도 과장의 아이디어가 뛰어나서 NB 사들이 계약을 했잖아요. 그거 없었으면, 저희 아직도 연간 계약 체결하지도 못했을 텐데요.”


“도 과장 아니면 좀 괜찮아요?”


“뇌성마비니까, 그냥 재활 치료만 계속 하는 것 같은데, 자세한 얘기는 잘 안 해서 저도 모르고요.”


“하긴, 울 마누라도 남의 집 애 취미로 봐주는데, 애들 다 키우고 할 거 없다고. 요즘은 완전 칼이더라. 칼같이 퇴근하고.”


“네, 저도 애들 베이비시터 맡기는데, 요즘은 정말 애 봐주시는 분이 상전이에요.”


“암튼, 그럼 차 대리는? 이번 승진 케이스 아니야?”


“승진 연수는 받았는데, 그렇게 또 승진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리까리해요.”


“왜? 승진하면 좋지. 이번에 조 팀장 팀 성과도 좋잖아?”


“자기는 승진하든 말든, 오래 다니는 게 목표라고.”


“요즘 애들은 참 신기해. 승진을 시켜 주겠다고 해도 승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네.”


“승진하면 팀 관리하고 중간 관리자가 되는 게 싫다고 대놓고 얘기하더라고요. 사실 승진 안 해도 되지요.”


“왜?”


“2년 전에 강남 아파트를 샀고, 자가 1채가 있고, 와이프가 인플루언서라고 해요. 그래서 백수보다, 건강보험 납부하려고 다닌다고, 아이한테도 ‘백수 아빠, 엄마 대신 운전해주는 셔틀 아빠보다 대기업 다니는 아빠가 낫다’고 하더라고요.”


“차 대리는 금수저야?”


“금수저는 아닌데, 와이프가 번 돈으로 아파트 갭 투자를 잘했다고 해요. 시기 적절하게 잘 갈아타기를 했더라고요. 거의 몇 억씩 오른 다음에 매도했다고 해요. 저도 그래서 한번 해볼까 하는데, 그게 보통 껌냥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저도 아직 전세라서요. 그게 대출도 껴야 하고,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난 분양 받았잖아. 나도 7억 정도 벌었어.”


“부문장님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떻게 아파트로 돈을 버셨어요?” 조 팀장이 리액션이 좋았다. 내가 듣고 싶은 그 말. 내가 이 회사 안 다녀도 7억은, 집 한 채로 노후 준비는 되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김 대리는? 김 대리도 이번 승진 차 아니야? 그 놈은 좀 말 대꾸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빨리빨리 좀 피드백 좀 하고.”


“김 대리는 MZ 세대잖아요. 하긴 차 대리도 그렇지만, 성향이 좀 다르죠. 김 대리는 ㅎㅎ 와이프가 약사도, 승진 교육은 받았는데, 겉으로는 막 뭐라고 하는데, 그래도 일은 깔끔하게 해요.”


“집은 있어?”


“집은 부모님이 사줬다는 것 같아요. 전세를 구해줬다네요.”


“다들 팔자가 좋군. 와이프가 돈 벌어주고, 와이프가 약사에... 조 팀장도 와이프가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지?”


“네. 학교 선생님이 워낙 박봉이라...”


“그래도 1년에 몇 달은 쉬잖아. 그건 생각 안 해? 아이들 키우기 좋고, 육아휴직도 몇 년?”


“그건 좋죠. 맞벌이로 같이 벌면서, 좀 제가 편하죠. ㅎㅎㅎ”


회식으로 직원들의 호구 조사를 했다. 내가 모르는 그것, 차 대리와 김 대리가 좀, 아니 차 대리가 아주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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