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누가 학생인지

by 그냥사탕

“알림장 확인했니?”

“숙제는 다 했어”

“물통이랑 간식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울려 퍼지는 나의 목소리다.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 기쁨의 강도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입학식 다음날에는 등교할 각종 준비물과 입고 갈 옷을 전날 밤 모두 꺼내놓고 바로 들고나갈 수 있도록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혹여나 필통 속 연필 한 자루라도 빠진 것이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설렘으로 뒤척거리다 밤잠을 겨우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침의 기상시간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지각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불편한지 나름 눈은 뜨고 있지만 이부자리 위에 앉아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상황은 일어난 것인지, 일어나고 있는 중인지 구분이 어렵다.


이럴 때 전업 주부였다면 다정함을 장착한 채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주기도 하고, 사랑 가득한 아침 한 상을 차려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있고 나는 24시간이 늘 촉박한 워킹맘이다. 이렇게 굼뜬 행보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양말 한 짝을 발가락에 넣는데 5분, 다리 한쪽을 바지 안에 넣어주는 데에 5분... 여기에 세수를 꼼꼼하게 하라는 나의 말은 다른 귀로 직행하여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 대체 누가 학생인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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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학교란 누구를 위해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심란함이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지각은 싫지만 일어나는 것은 힘겨운 8세 아이에게 서두르지 않는다며 채근할 수밖에 없는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사히 아빠를 통해 학교와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면 엄마 모드에서 직장인 모드로 전환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2차전이 시작된다.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시간 오전 10시.


갑자기 어플 하나에서 알림이 울렸다. 무언가 해서 쳐다보니 아드님의 학교에서 알림장이 도착했다는 메시지. 나중에 확인을 하고 싶지만 오늘의 내용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확인 버튼을 누른다.


‘오늘의 알림장’

1. 선 그리기 공책 해오기

2. 아침밥 조금이라도 꼭 먹고 오기!

3. 아무리 늦어도 10시 이전에 잠자기


별 것 아닌 내용이지만 나에게는 무게감 있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오늘 퇴근 후 아이의 숙제검사를 해야 한다. 하루종일 홀로 보냈을 아이에게 동화책을 조금이나마 읽어주고 약간의 대화를 할라치면 이내 커트라인 10시가 코앞이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들고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시작된 출근과 등교의 밸런스를 위한 시간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에 아침밥까지 챙겨 먹어야 하니 정말 빡빡하다.


‘내가 더 부지런해야 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기는 이내 나의 적응기가 되어 버렸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퇴근시간은 반갑기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사히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시간. 나는 또다시 3차전이 시작되었다.


무얼 하든지 온통 초점이 쏠릴 수밖에 없는 아이에게 정신없는 엄마의 모습만 보여줄 수 없다. 최대한 만렙의 여유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지없이 다가오는 잠자는 시간. 아직 아이와 대화가 다 끝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 불을 끄면 뭐가 그리 재미있고 궁금한 것이 많은지, 결국 ‘빨리 자!’라는 마무리 한 마디로 하루를 마감한다.

오늘도 10시가 훌쩍 넘어 집안이 조용해진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어린이집 가방에 이것저것 다 챙겨주는 것은 내 몫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나의 일과였다. 도대체 누가 학생인지 모르겠다. 그저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학생이라면 나는 교실에 존재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학생이다.


며칠,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아이는 진정한 학생의 모습으로 성장할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다소 바쁘다 할지언정 앞으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 자신이다. 그때를 위해 서로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기간이리라. 멈추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 못할 바에는 하루빨리 적응하고 나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할 듯싶다.


오늘도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며 일어났다.

식구가 하나둘씩 기상을 하면 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되겠지.


매일이 미션처럼 느껴지는 워킹맘은 이 과정조차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살짝 한숨을 짓고 미소를 만들어 보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명언처럼 웃으며 함께 헤쳐나가다 보면 언제나 초보 엄마이지만 진짜 베테랑처럼 보일 날이 분명 올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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