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전자기기는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 특성상 안전이라는 이유로 결국 이렇게 일찍 손에 쥐어주게 되어 버렸다. 휴대폰 하나로 나의 계획은 틀어졌고, 나가는 비용을 떠나 아이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네모난 작은 바보상자.
유용하게 사용하면 생활에 편리함과 다양한 장점들이 있다고는 하나 그동안 스피커폰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등에게 통화를 하다 보니 처음 가진 자신만의 휴대폰 사용을 항상 어색하게 이용하고 있다. 전화가 오는지 제대로 감지를 못하거나 전화를 할 때 스피커폰으로 바꾸지도 않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채 말이 들리지 않는다며 상대방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이.
처음 이런 장면을 마주하며 고작 8살짜리 아이에게 바보상자를 손에 들려주는 나와 상황 자체가 참 웃프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까지 무서워졌을까.
‘내가 어릴 적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연신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슬펐지만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해야 한다. 감성적으로 대하기에는 전업으로 아이를 케어할 수 없다는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러니 부정적인 면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게 된다.
금요일 오후.
태권도에 도착했다며 엄마에게 신고를 하는 전화.
잘했다며 어서 옷을 갈아입고 수업에 들어가라는 말을 하지만 이번에도 거리감 있게 들린다. 또 바닥에 내려놓은 채 옷을 갈아입으며 나와 대화를 하고 있겠지.
“엄마~! 엄마~! 소리가 안 들려요!”
“아들~ 핸드폰을 귀에 대고 말해야지!”
여전히 흐름 있는 대화가 어렵다 보니 결국 수업을 잘 들으라는 간단명료한 말로 전화를 끊는다. 내심 그렇게 중단된 이야기가 나 혼자 아쉬웠다. 그래서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쉬운 단어를 조합하여 문자 하나를 남긴다.
‘엄마가 사랑해’
나의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라면서 일하는 와중에 간간히 읽었는지 확인을 하지만 메시지 옆에 떠 있는 숫자 1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숫자 1. 결국 퇴근 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읽지 않았다. 분명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할머니 품에서 밥을 먹고 TV를 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심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엄마라는 건 언제까지나 외사랑 이기 때문일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반갑다면 내 다리를 한쪽씩 붙잡는 아이들을 마주하니 그제야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며 아이와 짧은 대화시간을 가져본다.
‘아들~ 엄마가 아까 문자 보냈는데 확인했어?’
‘아니요~ 그게 뭐예요?’
아! 모르는 거였구나. 외면당한 것이 아니었어.
분명 아빠가 문자 보내는 법과 받는 법 알려주었는데 아직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다시 한번 알려주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에게 유난히도 많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이게 뭐지?’
사랑받는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보내셨나 싶었지만 메시지함 안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번호들로 갖가지 스팸 문자들이 가득했다.
‘나 한가해요~’
‘대출 한도 XXX까지 됩니다’
‘해-외-선-물- XXX’
어쩜 이렇게 무작위로 보내는지... 개통한 지 이제 열흘 밖에 안되었는데 등록되지 않은 번호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보내는 국제발신 번호까지 참 다양하게도 찍혀 있구나. 정말 너무하다!
이제 겨우 한글을 드문드문 읽기 시작하는 8살짜리 아이에게 광고 아니라고 말하면 걸러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더욱이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산타 할아버지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아이인데... ‘해외 선물’이라는 단어는 비행기를 타고 오지 못하는 산타의 위험한 초대장같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통화목록에도 알지 못하는 부재중 번호들이 보였다.
아무리 돈이 좋다 한들 너무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 아이인지라 그 사실은 아직까지 인지 못한 듯싶지만 어쩌자고 이렇게들 사는지 분노가 치밀었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손에 쥐어준 핸드폰이 외려 위협으로 다가왔다.
저장되지 않은 문제의 메시지와 통화 기록을 전부 지우면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했다. 이름이 뜨지 않고 번호로만 오는 것들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받지도, 누르지도 말라고 말이다. 세상 행복하고 좋은 것만 누리고 살게 해 주고 싶은 내 아이. 그러나 이런 예측하지 못한 검은손들이 사방에서 우리 아이에게 뻗어온다.
아이가 없어 인구절벽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보다 있는 아이들이 위험에 빠진다는 기사가 훨씬 무섭게 다가온다. 현실은 어둠이 가득한데 이를 보는 어른들이 어찌 마음 편하게 출생을 논하겠는가. 사람은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동물이다. 아직 나오지 않은 아가들의 선배들이 이런 무서움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면 부모들이 과연 마음 편하게 2세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모두 덮어둔 채 무작정 낳으라고 지원한다는 것은 그저 종족 번식의 의무나 지키라는 막무가내식 외침이 아닌가.
메시지 함에 있는 부적절한 내용들은 전부 스팸처리를 하며 삭제했다.
하지만 나에게 오는 양보다 더 많아 보이는 이것들은 아마도 새로운 번호를 통하여 계속 내 아이를 위협할 것이다. 보호하고자 마련했던 핸드폰이 제 역할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더 이상 오지 않도록 무의미해 보이는 기도를 오늘도 다시 해 본다. 그리고 스팸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간곡히 요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