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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11. 2022

배워서 남주나

에피소드 3-나는 선생님이었다

 나는 전문상담교사 1급 자격증과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처음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던 동기는 교감 승진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감 승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들이 필요한데 직무연수, 시범학교 운영 등의 가산점 외에도 근무평정 성적, 경력 점수 등도 들어간다. 또 하나는 교직 경력 5년쯤에 받은 1급 정교사 자격증 성적이다. 지금은 바뀌긴 했지만 2~30년 전에 받은 자격연수 점수가 들어간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1980년 2월에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그해 3월 1일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교대를 졸업해도 임용고사를 통과해야 하지만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임용고사가 없어 졸업과 동시에 교사 발령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교대를 졸업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주기 때문에 교사로 근무하고 5년 정도 지나면 1급 정교사 자격증을 위한 자격연수를 받는다. 나는 1985년 여름방학에 모교인 서울교대에서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았다. 연수생 중 반 정도는 교대 동기들이어서 졸업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그 당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교수님들이 점수를 아주 짜게 주어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는데도 86점 정도밖에 받지 못하였다. 90점 이상 받으면 우등상을 받았을 정도다. 이 점수가 교감 승진에 사용되는 아주 중요한 점수라는 것을 40살이 넘어서 교감 승진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점수로는 교감 자격연수 차출이 어려워 전문 상담교사 자격증을 받아 그 점수로 대체해야 해서 나에게는 전문 상담교사 과정이 필수로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관운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지금은 이러한 규정이 없어져서 1정 점수가 낮은 사람이 만회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점수 배점은 줄어들었다고는 한다.    

  


 여러 대학을 알아보다가 야간 1일과 주말 1일로 주 2회 1년 과정이 있는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합격을 하여 2007년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과 토요일 전일제로 수업을 받게 되었다. 수업은 숙대 교수님들이 해주셨다. 매주 과제가 있었는데 과제는 사례 관리가 많아 쉽지는 않았다. 다행인 것은 당시 근무하던 학교가 교육복지학교여서 다양한 사례를 찾는데 힘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과제도 잘 해결한 것 같다. 1학기 수업을 마치고 중간 학점이 다행히 나쁘지 않아 2학기에는 발표도 더 열심히 하고 시험 준비도 철저하게 하여 평균 97점이라는 성적을 받게 되었다. 결과가 너무 좋아 힘들었던 일은 다 잊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1년 과정을 마치고 2007년 12월 말에 전문 상담교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이 점수 덕분에 나중에 교감 자격연수에 차출되어 교감도 되고 지금의 교장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그 당시 근무하던 학교가 교육복지 학교여서 승진 가산점도 받을 수 있어서 2006년 3월에 초빙교사로 갔었다. 초빙교사로 가면서 교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6학년 담임과 교육복지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다음 해에는 6학년 담임 겸 학년 부장, 그리고 생활체육부장을 담당했는데 업무가 많아 매일 저녁에 남아서 일을 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우리 반 학생들이 정말 힘들게 하였다. 소위 ADHD 학생도 몇 명 있었고,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이 많아 6학년 담임이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힘들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상담 공부를 하면서 그 아이들이 이해되어 밉지 않았다. 아이들을 이해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져서 무사히 졸업도 시키게 되었다. 6학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훈이랑 몇 명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간 후 스승의 날에 길에서 장미꽃을 꺾어서 찾아온 것이다. 짜장면을 사주며 이야기를 하는데 초등학교 선생님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 후로도 몇 번 찾아왔었다. 특히 어떻게 알았는지 고등학생이 되어 교감 발령을 받은 학교를 찾아온 거다. 키도 엄청 많이 컸고 마음도 많이 자라 의젓해진 모습을 보니 기특하였다. 지금은 사회에 나가서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다.      


 상담교사 자격증을 따려는 이유는 또 있었다. 퇴직 후에 상담이 필요한 곳에서 상담교사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어 나를 고용할 곳이 있을지 모르지만 기회가 되면 상담교사로 일하고 싶다. 노인 상담사 자격증도 얼마 전에 취득하였다. 퇴직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말동무가 필요한 어르신을 위해 노인 상담사로 일하는 것도 꿈꾸어 본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니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에게 맞는 제2의 인생을 기대해 본다.     


‘배워서 남 주나?’란 말을 우린 자주 사용한다. 상담교사 자격증을 받기 위해 공부한 것이 교장이 된 후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사와 상담할 일도 많았다. 특히 학급에서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담임선생님 선에서 해결되기도 하지만 학부모님께서 교장 선생님과 만나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 학부모 상담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배워서 남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이든지 배우면 나한테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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