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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27. 2022

내가 치매야

깜빡깜빡하는 일상

 요즘 자주 깜박깜박한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가다가 마스크를 안 써서 도로 들어간 적도 많다. 퇴근길에 짝꿍이 부탁한 것을 까맣게 잊고 그냥 집으로 바로 간 적도 있다. 방에 뭘 가지러 들어갔다가 왜 왔는지 몰라 다시 주방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간 적도 수없이 많다. 어떤 때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냥 자려고 하다가 한밤중에 생각이 나서 일어나서 널고 잔 적도 있다. 내가 치매 초기인가 하고 걱정이 된다. 하지만 주변에 이야기해보면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오후에 머리가 자주 아픈 것도 같고 미열이 있는 것도 같아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기로 했다. 하루 병가를 내고 오후에 조퇴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다. 뇌 MRI를 찍어보기 위해서다.     

 


 예전에 깜빡거리는 습관 때문에 큰일을 당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대부분 화장실에 가방을 걸어두고 그냥 나온 사건이다. 몇 년 전에 정선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여행하던 중 정선 재래시장에 가서 시장을 둘러보다가 공중화장실에 갔다가 가방을 두고 나왔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가 핸드폰을 보려고 가방을 찾았는데 없었다. 아이코! 순간 앞이 새까매져서 화장실에 달려가 보니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한숨이 나왔다. 가방에는 신용카드와 주민등록증, 현금 등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사건은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있었다.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고 동네 마트에 갔다가 가방을 걸어 놓고 와서 직원이 찾아 준 적도 있다. 세종문화회관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가방을 또 두고 나왔는데 뒤따라 들어갔던 분이 가방을 가지고 화장실 밖에까지 달려 나와서 가방을 찾아 준 적도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모두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가방을 찾아 다행이었지만 그 순간 가슴 조였던 것을 생각하면 수명이 몇 년은 줄었을 거다. 요즘 여행 갈 때 아예 크로스로 멜 수 있는 가방을 가지고 간다. 가방을 몸에서 내려놓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하철 화장실에 가도 ‘가방~’ 하고 한 번 더 말하고 앞쪽 고리에 가방을 걸어 놓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그래서인지 요즘 가방 사건은 별로 없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정신 바짝 차리고 살려고 한다.     


 병원에 혼자 입원하여 밤에 뇌 MRI를 촬영하였다. 촬영하기 전에 무슨 나쁜 일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이 많이 되었다. MRI는 처음 촬영하였는데 촬영하는 과정도 공포심이 컸다. 소리가 커서 귀에 이어폰을 끼워 주고 촬영하였다.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수면으로 촬영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증상은 없어서 그냥 촬영하긴 했지만 다음에는 다시 촬영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검사 결과를 보러 진료실에 내려갔는데 다행스럽게 뇌로 올라가는 혈관도 막힘이 없고 뇌 주름도 좋다고 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입원한 김에 치매 검사(인지 검사)도 하였다. 요즘 가장 불편한 것이 사람 이름과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나기도 하지만 가끔 대화를 나눌 때 불편하기도 하고 미안할 때도 있다. 이런 것을 명사 치매라고 들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느라 시간도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르신들은 검사받다가 인지가 더 나빠질 것 같았다. 그만큼 지루하고 힘들었다. 검사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검사 결과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나 생각했던 대로 명사 기억력이 약하다고 나왔다. 그러면서 매일 암기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했다. 퇴원하며 의사 선생님께서 뇌 영양제를 처방해주어 요즘 복용하고 있다. 검사 후에 매일 가족 전화번호를 하루에 1개 이상 외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식물 이름 외우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아직도 외우면 그다음 날 또 잊어버린다. 반복이 중요한 것 같다. 반복해서 외우다 보면 기억되는 것이 늘어 나리라 생각한다.     


 친정어머니가 노인성 치매 초기라 나한테도 유전 인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걱정되어 검사하게 되었다. 검사를 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깜빡깜빡하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들어 그러는 거라 그냥 그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신 잘 차리고 큰일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이런 나를 두고 짝꿍은 늘

 “할머니, 정신 차리고 사세요.”

본인은 깜빡깜빡해본 적이 없는 듯 말한다.



 4월 말이었다. 둥이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함께 갔다. 유아복 매장에서 여름옷을 한 벌씩 샀다. 쌍둥이라 옷을 살 때는 같은 것으로 두 벌을 사거나 디자인은 같은데 색상만 다른 걸로 하나씩 산다. 그날도 요즘 엄마들이 좋아한다는 유아복 매장에서 옷을 사서 예쁘게 선물 포장을 하고 우린 너무 흐뭇해했다. 손자 선물은 언제나 제일 좋은 것으로 사주고 싶다. 할머니의 마음이다. 옷을 사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짝꿍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아무 생각 없이 차 문을 내가 먼저 열고 앉아 있는데 짝꿍이 운전석에 앉았다. 요즘 차는 스마트 키라 차 키를 꺼내지 않아도 되기에 짝꿍은 키가 없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 가방에도 키가 있었기 때문에 시동이 걸린 것이었다. 한참을 운전하고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짝꿍이 가방이 안 보인다는 거다. 생각을 되돌려 보니 아무래도 화장실에 가방을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여 백화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직원이 주차장 화장실에 다녀온 후 가방을 찾았다고 했다. 가방은 다음 날 짝꿍이 찾아왔지만 그 이후에는 나한테 정신 차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린 아무래도 함께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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