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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포도 Oct 28. 2022

잔소리꾼 엄마라서 미안해

쌍둥아. 너희는 지금 책을 읽기 싫다고 몸을 베베 꼬고 있단다. 침대에 함께 누워 읽어주어야 자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네. 너희의 그 마음을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야. 엄마도 그랬었으니까. 대체 백일장은 왜 있는 건지, 대체 일기쓰기 숙제는 왜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서 괴로웠던 기억이 나는구나. 엄마는 너희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지는 않길 바란단다. 그깟 책 좀 멀리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거든.  책이 죽도록 싫었던 나도 엄마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잖아? 


그런데 말이야. 희한하게도 엄마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깨닳았어. 책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의 깊이가 현저하게 차이난다는 걸 알게된 순간이 여럿 있었지.     


벌써 10년 전 일이야. 어떤 영화가 개봉을 했고, 그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어.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그녀를 알 수 있는 100개의 질문을 준비해갔지. 연기 잘 하기로 유명한 그녀와의 만남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하면서 말야.


그런데 그 기대는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와장창 깨져버렸어. 왜냐고? 그 여배우는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거든. ‘아...’로 시작해서 ‘어...’로 끝나는 대답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히 100개의 질문에서 기사로 쓸 수 있을만한 대답은 10개도 채 되지 않았어.


매우 실망스러웠단다. 대중이 아는 그녀와 실제의 그녀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 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녀를 ‘바보’라고 폄하하고 다니곤 했지. 그렇게 하면 엄마의 위상이 높아지는 줄 알았었나봐. 왜 그랬을까. 뒷담화를 위장된 질투심이었을거야.


그 후로 1년 만에 그녀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가 개봉했어. 작품이 내포한 메시지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강렬한 작품이었지. ‘어차피 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할 테니까’라는 생각에 성의 없이 준비해서 그녀와 마주 앉았어. 그런데!     


그녀는 전과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아예 다시 태어난 듯 했지. ‘아...’가 없으면 입을 못 열었던 그녀가 청산유수가 되어 돌아온 거야. 심지어 분위기를 이끌기까지 하더라. 어벙벙해진 나는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못한 채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어야만 했지. 대체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너무 궁금했어.


“지난 1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녀는 슬쩍 미소를 보이더니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라. 그때 엄마의 질문에 기분 좋아보이던 그녀의 눈빛과 손동작을 잊을 수가 없단다.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었어요.”     


당황스러웠지. 스피치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면서 말을 잘 하게 된 이유가 고작 책을 읽은 것 뿐이라니. 믿을 수 없었고, 이제 그녀는 정말 다 가졌다는 생각에 부러웠고, 그래서 솔직히 짜증도 났단다.    

 

“매니저에게 혼났어요. 배우라는 사람이 말을 그렇게 못 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요. 대사를 읊는 것과 대화를 하는 건 다르잖아요.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매일 책을 한권씩 읽었습니다.”    

 

그렇단다.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단다. ‘예쁜 바보’를 ‘예쁜 달변가’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 우습겠지만 그날 이후 엄마는 무작정 책을 읽어댔단다. 마치 그녀를 뛰어 넘기 위해 애쓰는 것 처럼 말야.


책이 주는 힘을 경험한 건 그녀와의 만남 뿐만은 아니었어. 영화 <친구>와 <똥개> 등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과의 인터뷰도 꽤나 강렬했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야. 곽경택 감독과의 만남은 즐거웠어. 대화가 아주 잘 통했지. 무엇보다 모르는 게 없다는 게 놀라웠어.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망실살이라도 당할까봐 걱정스러울 정도였단다.      


그는 항상 책을 들고 있었어. 아마 곽 감독이 박학다식한 이유일 거야. 머릿속 뇌를 끄집어내는 창작의 고통이 따르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오죽하겠니. 자칫 잘못된 정보가 작품에 녹아들었다간 의도치 않은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늘 책을 가까이 하셨던 것 같아.    

 

쌍둥아. 책을 많이 읽는 사람 곁에는 늘 사람이 많단다. 아는 게 많으니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지식이 많으니 말도 재미있게 잘하지. 당연히 그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아. 그 여배우와 곽경택 감독 곁에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거야. 그래서 엄마도 죽을 때까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고싶단다. 너희도  그러길 바라지만, 인터넷과 TV, SNS 등 책보다 더 재미있는 플랫폼이 쏟아지는 세계에서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아. 미리 사과할게. 


‘엄마가 자꾸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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