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르게 생각하기 - <too better thinking> 중에서
추석과 개천절 사이에 대체 휴무가 더해지면서 앞뒤로 4일만 휴가를 내면 열흘이 넘도록 쉴 수 있는 일명 ‘황금연휴’가 탄생했다. 환호하는 직장인과 그렇지 못한 육아맘들의 목소리를 모두 듣고 있자하니, 냉탕과 온탕을 오간 듯 춥다가 덥다.
그나저나, 긴 연휴 덕분에 남편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을 두고 눈치 싸움을 안해도 되겠다 싶었다. 노는 날이 많으니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사람들은 아마도 천천히 출발했다가 늦게 돌아가겠지? 두 아들을, 아니 세 아들을 이고 메고 내려가느라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달까.
그런데 웬걸, 걱정 좀 할 걸 그랬나. 연휴 첫 날 새벽 4시에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인 두 아들을 들쳐 맨 채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출발했는데, 서울에서 대전까지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도쿄에서 라면 두그릇을 먹고 동키호테를 털고 와도 남을 황금같은 이 시간을 도로에 갇힌 채 보냈다. 하..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다. ‘연휴가 기니까’, ‘시간이 많으니까’ ‘새벽 4시에 출발하면 안 막힐거야’라는 생각으로 동시에 시동을 켠 셈이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비슷하게 생각하고 살까. 그것도 짠 것처럼,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새벽 4시 출동’ 지령이라도 받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7시간동안 차 안에 갇혀 저린 궁둥이를 달래가며 도착한 시댁에서 나는 가장 먼저 ‘언제 올라가야하지?’를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기는 싫었으니까.
이같은 현상은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며 그래서 복잡한 상호작용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다양한 배경과 경험과 문화를 가졌음에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한다. 나는 이러한 사회 현상 덕분에 심리학, 사회학, 인지과학 분야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볼까. 진화 심리학은 인간이 공통적인 인지 특성과 능력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능력과 얼굴 표정에서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은 인간이 가진 공통점이다. 강의 중 눈만 보고 감정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었는데, 이같은 결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된 인지 특성은 인간 조상들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이유’로 내가 가장 신봉하는 이론은 인지 유사성이다. 사회화는 개인이 자신의 사회의 규범, 가치 및 인지 프레임워크를 배우는 과정을 의미하며, 이 과정은 공유된 사고 방식의 형성에 기여한다. 다시 말해 둥근 산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산이 둥글다고 말할 것이고, 초록빛 바다를 보고 자란 사람들은 바다가 초록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동네 줄넘기 방식과 옆동네 줄넘기 방식이 다른 이유다.
그러니까,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말인데, 크게 보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땅덩이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지 않나. 당연히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정된 사고를 스키마라고 하는데, 이 스키마는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연휴가 길면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천천히 이동할 것’이라는 고정된 스키마가 나를 새벽 4시에 깨운 것이다.
그렇다면 남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왜 없겠나. 많은 학자들이 수세기를 거쳐 공유하고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충분히 남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다. 스키마 안에 갇혀있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풍부하게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니까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산업이 극단적으로 진화하는 것 아닐까.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아주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배경에서 생활하는 동물이며,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했는지에 따라 나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는 ‘내가 생각하는 걸 남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건 나만 아는 거야!’라고 단정하기에 사람들은 비슷한 스키마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지금부터 당장!
먼저, 다른 문화와 소통하고 다른 문화의 인식, 믿음 및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면, 인간의 사고 및 판단이 어떻게 문화에 의해 형성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언어를 배우고 문화 간에 언어적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좋다. 언어가 다른 사람끼리의 스키마는 당연히 다를 것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그에 따른 결과도 다를 것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보자. 이 나이 먹고 왠 언어냐고? 어렵다면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보자.
다른 문화와의 국제 협력 프로젝트나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증가시키는 것도 추천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사고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젊다면 ‘워킹홀리데이’나 ‘코이카’에 지원하라고 권한다. 다른 세계의 문화를 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스키마는 완전히 다를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
추석 연휴 떠났던 귀경길에서 파생된 ‘남과 다르게 생각하기’는 결국 스키마 이론을 지나 국제 교류까지 갔다. 뻔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이 뻔한 걸 실천하고 있지 않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어떻게 되었냐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7시간 30분 걸렸다. 결국 나도 남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