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아. 얼마 전 쇼킹한 일을 겪었어. 온라인 마트에서 필요한 생필품 몇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걸 보고 차마 결제를 하지 못했거든. 체감 물가가 황망할 정도다 어마어마하구나.
그 후로 엄마는 가계 지출을 줄이고자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단다. 꼭 필요하지 않은 건 안 사고, 꼭 필요한 건 당근마켓 앱을 통해 저렴하게 구매하고 있지. 덕분에 생활비를 톡톡히 아낄 수 있게 됐단다.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요긴한 앱이지. 당근 만세!
좋은 물건을 싸게 잘 사면 두고두고 기분이 좋단다. 어쩌면 내 평생을 함께 하는 반려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잘 사면, 잘 산단다.
마음도 마찬가지란다. 사람의 마음을 잘 사면 잘 살 수 있거든. ‘buy well, live well’이 꼭 물건을 사는 행위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야.
엄마가 대학생활을 청산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였어. 당시 신인 배우였던 모 여배우와 취재 차 만날 기회가 생겼어. 동글동글한 눈코입이 조막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밀집되어 있는 걸 보고 ‘사람이 이렇게도 생길 수 있구나’ 싶었던 내 인생 최초의 여배우였지. 그때는 엄마도 초짜, 그녀도 초짜. 특급 초짜끼리 만났으니 대화는 당연히 산으로 갔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정작 기사로 쓸 말은 없었단다.
열정만 앞서는 어리숙한 초보 기자의 허둥지둥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망한 인터뷰’라고 자책하며 셀프 자숙 중이던 어느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어.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었어요. 우리 자주 만나요.”
프러포즈였달까. (엄마는 여자고, 그녀는 남성애자란다.)
우리는 둘 다 E이고 P인 성격인 탓에 급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꽤나 의리파인 그녀의 성격이 엄마의 마음을 훔쳤어. 톱스타가 된 후에도 두 번이나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으니, 이 얼마나 감동적이니. (물론 지금은 바뀐 번호란다. 하하)
그렇다면 그녀는 엄마의 어떤 면모를 높이 샀던 걸까. 예뻐서는 아니었겠지. 귀여워서는 더더욱 아니었겠지. 완벽한 척 하는 허점투성이인 엄마에게 직진 고백을 한 이유가 대체 뭐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란 말야. 아무튼, 그녀 덕분에 엄마의 기자 인생은 종종 즐거웠단다. 고맙게도.
쌍둥아. 잘 살고 싶다면, 즐겁게 살고 싶다면,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부터 하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명품백 하나 사기가 쉽지 않지 않니?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 적어도 그보다는 쉽단다. 별 것 하지도 않았는데 여배우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은 엄마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