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재일이다. 일주일의 중간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수요일로 연재 요일을 정했다. 조금이라도 텐션을 올려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전 연재일인 금요일에서 주말을 쉬고, 월, 화 이틀이나 쉬고 나면 글 쓸 소재도 늘어나 있고 글도 조금씩 써둘 테니 글쓰기가 수월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어째 금요일 연재보다 수요일이 더욱 어렵다. 수요일에 약속도 잡지 않고 최대한 집안일도 미루면서 글 쓸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려 하지만 다 무용지물이다. 책 좀 읽어볼까 갑자기 새로운 책을 집어 든다. 아니, 화장실이 왜 이리 더럽지, 하며 청소 솔을 집어 든다. 미루고 미루는 나의 성격은 웬만해선 도망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마감 시간은 점점 압박해 오는데 이를 어째, 더 쓰기가 싫어진다. 미뤄둔 집안일을 하면서 펼쳐둔 노트북만 힐끔거린다. 머릿속으로 먼저 개요를 짜보자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오늘만 세일한다는 마트 생각에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핸드폰을 찾는다.
얼마 전 코칭을 받으면서 아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미적대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코치님은 내가 지난달에 꼬박꼬박 할 일을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질문에 나는 성실한 편이며 남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글쓰기 싫어서 계속 뭉그적거리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한 지금의 나를 마주하자니 그날 대답이 부끄럽다. 꼬박꼬박 했던 일은 내가 좋아하고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을 거란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앗, 쥐구멍이 어딨지. 숨고 싶다.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싫은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가 났던 것이 틀림없다. 사람들에게서 싫은 모습을 발견하면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화내고 분노하기 전에 그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가 아닌지 먼저 살피라던 말을 왜 까맣게 잊었을까. 심지어 내 유전자를 받은 아인데 왜 날 먼저 돌아보지 않고는 나와 너무 다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까.
매사 닥쳐서 하는 편이다. 시험공부도 벼락치기를 즐겨했다. 대학 가서 첫 시험에 벼락치기 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 곤욕을 치렀다.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서 노트 정리만 하다가, 아니 어떤 과목은 정리도 미처 다하지 못한 채 시험을 봤다. 대학 때 주말이면 본가로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2-3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내려갔는데 천천히, 우아하게 걸어서 기차역을 갔던 적은 아마 손에 꼽을 것이다. 반대로 숨이 턱까지 차서 승강장에 거의 아무도 없을 때 기차에 올라탄 적은 수도 없이 많다. 아, 생각해 보니 과제 제출도 과사무실에서 이미 교수님 방으로 전달된 뒤라서 방문 틈새로 밀어 넣은 기억도 난다. 미루다가 마감을 넘겨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은 양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자꾸 옛이야기를 할수록 엉망진창인 삶을 인증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마음 불안하고 불편한 삶을 지속했는지 묻는다면, 크게 구멍 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기차를 탔지만 단 한 번도 기차를 놓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방문 사이로 과제를 밀어 넣을지언정 과제 기간이 연장되기 전에 늘 제출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는 10년간 출근시간이 임박해 상사 몰래 아닌 척 들어간 적은 몇 번 있지만 지각한 적은 딱 한 번이었다.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빡빡한 일정이 마치 시간에 가성비를 높이는 느낌이 일견 들었고 스릴 넘치는 긴장감에 능률 또한 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회사 생활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예전보다 크게 개선되었다고 느낀다. 회사에 다니기 이전은 일을 닥쳐서 하다 피해가 있어도 대부분 내가 감당하면 됐다. 하지만 회사를 다녀보니 그런 나의 행동은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상사, 그리고 고객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마감을 해야 하는 일터였기에 나를 조금씩 바꿔야 했다. 매 순간 기다리는 고객들의 대기시간과 사투를 벌이는 일을 반영한 회사 CS 구호 중 하나는 '1초 빠르게'였다. 손과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음식을 먹는 속도마저 대폭 줄였지만 미리미리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나의 미리미리는 더 당겨졌다. 아이는 불안이 높은 편이었다. 새로운 곳에 갈 때는 미리 가서 적응을 해야 했고, 외출을 할 때는 신을 다 신고 나가려다 매번 화장실을 가겠다고 다시 집안으로 향했다. 방금 화장실을 다녀오고는 신을 신었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다섯 번도 넘게 반복한 적도 있다. 마치 열 번도 더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느껴져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이 됐다. 혹시나 늘 바삐 이동하고 채근하고 다그치는 내 탓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걸음이 느린 아이를 위해 약속 시간보다 훨씬 미리 출발을 했고, 먼저 가서 그 공간을 탐색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동 중에도 언제든 화장실을 갈 수 있다고 안심시키기도 하고 움직이고 있는 건가 의심이 될 정도로 느리게 걸어보기도 했다. 늘 빠르게 움직이며 긴장감을 높여뒀던 나의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느슨해졌다.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의 밀도도 빽빽해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급하게 몰아치며 일하다 보면 성글게 짜여 완성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금 예전보다 차근차근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지난 시간이 쌓이면서 오래 단련해 온 결과임이 분명하다. 10년간 나의 성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아이였다. 자꾸 재촉하는 엄마를 아이는 열심히 따라왔다. 자기와 많이 달라 보이는 엄마를 최대한 이해해 줬다. 잠깐만, 하고는 급하게 할 일을 해치우는 엄마를 아이는 참 많이도 기다려줬다. 네가 그동안 화 한 번 내지 않고 나를 가르쳐 주었구나. 이 기분, 이 깨달음을 잊지 않고 내일은 아이에게 화내지 않아야겠다. 언성 높이지 않아야겠다. 해야 할 일을 시간에 맞춰하지 않고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기다려 주고, 이해해 주고, 가르쳐 줘야겠다. 비록 마감 시간 직전 제출하게 되는 오늘의 연재 글이지만 이렇게 날 깨닫고 하고 성장시키다니. 아, 글 쓰기 참 좋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