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갑자기 얘기를 하자고 옆에 앉아보라고 한다. 이런 진지한 분위기는 흔치 않은 일인데,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든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 괜히 말을 툭 던져본다.
"왜 뭔데?"
"아니, 우리 가입했던 연금보험 납입이 이제 끝났지? 새로 하나 가입할까 해서. 언제 한 번 국민연금이랑 가입해 둔 상품들 계산해서 노후에 예상 생활비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 준비할지 계산해 보자."
"그래, 아무래도 새로 가입하면 좋겠지. 근데 이제 사랑이 교육비가 점점 많이 들 텐데 저축 금액이 너무 크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렇긴 한데 불입했던 상품도 끝났는데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던 금액이 남는다고 생활이 크게 나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 좋은 상품 찾아보자."
"그건 그래. ETF 같은 거 해볼까? 아니면 미국 배당주 같은 건 어때?"
"좋을 것 같긴 한데 해지하기 쉬우면 노후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잖아."
"맞아, 유지하는 것보다 해지하기가 더 쉽지."
은행에서 근무할 때, 부모님 나이대의 고객들을 많이 만났다. 현재 노후를 헤쳐가고 계셨는데 그중에 노후가 잘 준비된 분들은 별로 없었다. 그분들이 젊었을 때는 현재를 열심히 사는데 사회와 개인 모두가 집중되어 있었고 노후라는 개념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부모 이전 세대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모두 쏟아붓고 노후를 자식에게 기댔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부모는 부모 대로 부양하고, 자식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낀 세대다. 은행에 오신 많은 연세 있는 고객들은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수명은 길어지고 소득은 적어지는데 준비된 것이 없으니 불안한 게 당연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보험을 통한 연금 준비였다. 보험 상품은 고객의 입장에서 가입이나 운용 등에 드는 수수료도 비싼 편이고 무엇보다 중간에 해지할 경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보험을 권했던 이유는 그런 단점 때문이었다. 노후에 준비된 자금이 없는 이유는 젊었을 때 저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필요할 때 쓰다 보니 남아있는 저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해지할 수 없는 보험상품의 단점은 끝까지 남아있게 해주는 울타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앱에 접속만 하면 주거래은행뿐만이 아니라 모든 은행의 계좌 명세를 확인할 수 있고 간단한 인증절차만 걸치면 해지가 몇 분만에 되는 요즘에는 더욱 필요한 울타리다. 실제로 사람들이 갑자기 자금이 필요해서 은행에 왔을 때 보험 해지는 마지막 보루다. 해지하는 즉시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장점을 크게 느꼈고 고객들은 물론, 가족들, 같이 일하던 어린 직원들에게도 가입하라고 권했다. 그때 가입했던 상품은 어느새 불입 기간이 끝났고 복리가 마법을 부리길 기다리고 있다. 정말 불가피한 사정으로 보험마저 해지한다고 해도 일찍 가입할수록 손해 보는 금액은 적어진다. 최대한 일찍부터 보험상품으로 연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수익률이나 상품의 구조를 비교하여 어떤 것이 더 많이 불어나는지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끝까지 남아있는 것에만 집중한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 반영되어 있다.
2023 가계금융복지조사(통계청)에 따르면 사람들이 희망하는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324만 원이라고 한다. 이 금액을 다른 자산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금융상품을 통해서만 준비한다면 매월 얼마를 저축해야 할까? 국민연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기금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점점 받는 사람은 늘어나고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 기형적인 구조에 내 노후를 안심하고 맡겨도 될까?
NPS 중앙노후준비지원센터에 접속하면 여러 가지 노후에 관한 자금을 모의로 계산해 볼 수 있다. 국민연금부터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모두 따져볼 수 있다. 국민연금을 먼저 계산해 보았다. 10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낸 연금과 퇴직 이후 최소 금액으로 불입하고 있는 것을 계산해 보면 100만 원 수령이 예상된다고 한다. 믿을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 금액을 제하면 200만 원가량을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올해부터 1백만 원씩 10년 동안 불입하고 65세부터 35년간 지급받는 것으로 입력해 보았다. 놀랍게도 월 77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한 달에 200만 원을 받으려면 3백만 원씩 준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3백만 원이라니, 계산을 잘못한 것일까? 장 한 번 보면 10만 원이 우습게 나오는 요즘, 외벌이 월급쟁이는 한 달에 1백만 원, 아니 50만 원 저축하기도 쉽지가 않다. 매달 받는 월급 내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빚이 늘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는데 노후를 위해 50만 원씩, 1백만 원씩 떼놓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적정 생활비를 위해서 지금부터 3백만 원씩 10년을 저축해야 한다니, 저축을 통해 노후 자금 전부를 준비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다. 게다가 간과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적정 노후생활비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당 진료비는 497만 원이며 지속적인 증가 추세라고 한다. 아프기 시작하면 생활비는 예상한 것이 무색하게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것이다. 아무리 실손보험, 보장보험을 통해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철저하게 준비할수록 높아지는 납입보험료는 현재 생활비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건강이 노후 준비에 필수라는 결론이 나온다. 술을 줄일 수 없고 빵을 줄일 수 없다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기 싫다면 식단을 조절하고, 모두 어렵다면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든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서 건강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요즘 일자리를 찾고 있다. 아이가 점점 커가며 여유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노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확충하겠다고 예산을 편성한 것은 세태를 반영한 것일 것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즘은 일을 했던 기간보다 일을 하지 않은 기간이 더 길다. 긴 시간 일을 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개인 건강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 것이다. 경력은 단절되고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긴 노후를 평안하게 보내려면 일은 꼭 필요하다. 시간이 들더라도 노력해서 찾고 싶다. 노후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더 빨랐다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더 많이 저축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건강을 챙기고 내 일을 찾아야겠다. 이보다 나은 노후 준비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