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거동은 불편해도 봄 나들이 나온 어른들은 여전히 밝은 표정이었다. 병색 짙은 호식마저 기운이 난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는 연이 손을 지만이 붙잡았다. 잠시 스친 연이 눈빛이 포근했다.
햇살이 거실을 밝게 비추는 빌라 일층, 이십오 평 선영의 집. 혼자 두 아이 키워내며 이만한 집 한 칸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이는 딸이 이사를 전전하느라 변변한 살림도 없이 지낼 때와는 다르게 소박하지만 감각적으로 배치된 가구들과 소품들로 치장하고 사는 모습이 흡족했다.
음식들로 교자상을 채우고 가운데 케이크가 놓였다. 밤에 일하느라 바쁜 딸이 엄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파티를 잘 즐겨야겠다고 연이가 생각했다. 선영은 고깔모자를 세분 어른께 씌워드리고 생일 노래 부르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지만이 준비한 금일봉과 선물 꽃바구니를 연이가 기쁘게 받았다. 호식은 선물대신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지만과 연이가 손사래 치며 말렸다. 누구보다 호식의 노래실력을 아는 이들에게 호식의 노래는 고문인 것을. 한바탕 웃음이 분위기를 한층 밝게 했다.
어른들이 맛나게 음식을 드셨다. 선영도 선수도 엄마의 생일파티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자꾸 두 어른의 손으로 선영의 눈길이 쏠렸다. 음식을 드시는 중간에도 꼭 잡은 손을 놓지 않는 두 사람. 선영은 ‘이건 뭐지?’라는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편하게 드시지 않고 왜 손을 잡고 계세요?”
손을 빼려는 엄마,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는 어르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나 엄마랑 이 손 놓지 않기로 했네. 우리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
“ 무슨 말씀이세요. 두 분 친구 사이 아니세요?”
연이는 딸의 뾰족한 성격을 알기에 지만의 돌출 행동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으나 행복에 달뜬 지만에게 선영의 불편한 얼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 오래전부터 엄마를 좋아했고 오늘 오면서 프러포즈했거든. 물론 사여사도 동의했고.”
“ 누구 맘대로 프러포즈를 해요. 두 분이 서로를 책임질 수 있기나 한가요?”
결국 선영의 가시 돋은 말로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이 되어 버렸다. 선수도 심기가 불편한 건 매한가지였다. 오는 차 안에서부터 두 어른의 행동이 불편했던 선수도 내심 꾹꾹 참고 있던 터라 누나의 이의 제기에 동조했고 생일파티는 순식간에 파국으로 향했다.
"엄마 내가 분명히 물어봤죠, 두 분사귀는 거냐고? 엄마는 아니라고 친구라고 하셨고요"
선영은 그동안 친구라고 주장하던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 연이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지만이 불씨를 키워버렸다.
“ 우리 결혼할 거야.”
불같이 화 내는 딸에게 연이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야속한 생각은 지만에게도 들었다. 경솔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실망감도 느꼈다. 그렇게 파티는 포성만 남긴 채 난장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