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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봐! 털어줘! 우리 서로 HUG!^^

쉬어가는 브런치 - 모금 에피소드

by 구르는 소

*모금 관련 일을 하면서, 겪었던 기억들의 파편들을 모아 구성한 에피소드입니다. 이야기흐름이나 특정 기업, 상황 등에 대해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아 주세요.^^


1. 어젯밤에 모 대기업의 전략실장으로 근무하는 재벌 2세의 음주운전이 뉴스에 나왔다. 운전기사도 있을 텐데, 야근수당이 아까워 운전기사분을 들여보냈나... 바쁘신 야근 중에 술도 쟈시고 열심히 사시네. 저래서 그 회사가 돈 버나 보다.

어쨌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동안 2번 정도 만나서 명함 교환했던 그 기업의 홍보팀 과장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지난번 인사드렸던 000의 사회공헌 팀장입니다. 제안드렸던 여러 활동에 대해 다시 논의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서 간신히 딱 2번 만났던 분인데... 어제 음주사건 이후로 그날 바로 회신이 왔다.


'아. 지난번 제안도 좋았고.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좀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저희 부장님도 같이 보자고 하시는데 내일 같이 보실 수 있을까요?'


차기 기업 오너 되실 분이 구설수에 오르셨으니 아침부터 그 회사 전쟁터가 됐을터. 안타까운 회사 사정은 안타까움으로 남기고 일단 go!. 사회공헌 활동이나 모금으로 이슈를 덮으려 한다는 비판을 이 회사가 받겠지만, 어쩌랴. 일이 터진걸. 이렇게라도 나눔에 동참하려고 마음을 먹는 걸 위안 삼자. 이런 일 터져도 나눔이나 기부에 관심 없는 기업이나 개인이 대다수. 여긴 염치라도 있군.

여기저기 사회단체들에서 엄청 전화 왔었을 텐데.. 미리 만나 두고 아침 일찍 메시지 보낸 전략이 잘 먹혀들었다.


2. 교회에 다녀와 쉬고 있는 주일 오후. 자막뉴스로 J국가의 어디 해안지대에 강도 7.5의 지진이 발생했단다. 조금 뒤 쓰나미도 우려된다고 또다시 긴급속보로 나온다.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 사망자가 몇 명 내외라니 그나마 다행인가.... 했는데 한 시간 뒤 몇백 명으로 늘어났다. 저녁때쯤 피해규모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런... 새벽에 출근해야 할 듯하니 빨리 자자.

다음날 새벽, 출근하며 보니 해당 지역에 우리 기관의 긴급구호활동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어 모바일상에 임시 소통채널이 만들어졌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그동안 관계했던 기업들과 단체들 중 J국가에 지사가 있거나 거래처가 있는 곳들의 리스트를 만든다. 아니나 달라, 오전 9시가 되자마자 회의가 소집되더니 11시쯤 긴급구호활동을 위한 파견 계획이 세워지고 임시 긴급구호팀이 구성된다.

나도 현장에 파견되고 싶지만... 한국에서 파견활동을 지원해줄 물자와 경비를 모금해야 한다.


그동안 긴급구호활동에 후원을 했던 개인 후원자 목록을 만들고, J국가에 후원하고 있는 기존 후원자들에게 관련 소식을 보내면서 증액 후원을 요청한다. J국에 지사가 있는 기업, 인근 국가 등과 대규모 무역을 하는 기업들을 찾아 전화 tm을 준비한다. 내부 가용 예산과 예상 모금액을 수립해서 긴급구호활동의 1차 규모를 정한다. 현장에 어떤 물자와 구호활동이 필요한지 사업부서와 같이 파악해서 이를 어떻게 국내 언론 및 후원자들에게 홍보할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국제구호개발 NGO에서 긴급구호를 위한 모금은 속도 싸움이다. 이게 1일~2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000 기업이 K단체랑 2억 규모의 물자 보낸다고 00 일보에 떴는데요.'

이런. 1등 놓쳤네. 아쉽지만 등수가 중요한 건 아니니 더 이상 등수에 미련 갖지 않는다. 현지 구호활동을 위한 기금 확보가 중요하다.

'자기가 들고 있는 리스트에 대한 tm 진행사항 보고해주세요~'


3. '자~ 다 같이 악수하고 서로 크게 안아주면서 오늘 일과 끝냅시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상호 격려의 말과 함께 서로를 안아주고 악수하면서 업무가 끝났다. 먼지 날리고 쇠독이 오르는 힘든 업무였지만, 모든 사람들이 보람 있게 일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동전을 비롯한 현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모금 현장에서 동전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대형 모금기관들이 동전으로 1년에 4~50억 원씩 모금할 때가 있었다. 동전 양이 어마어마해서 계수기로 각 금액대별 동전을 세는데, 먼지도 많이 나고 손에 쇠독이 오르기도 한다.

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동전 계수 시에 반드시 2인 이상 복수의 인원이 참여하도록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 동전 계수 방을 나갈 때에는 서로의 옷을 털어주는 격려? 의 행위를 같이 진행한다. 서로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고 격려하기 위함이다.

서로 크게 안으면서 옷을 털어주면, 혹시 작업 중 옷 등에 들어갔을 수도 있는 동전이나 지폐 등이 소리가 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나쁜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유인책이 되기도 하고.

나의 고생으로 지구촌 어려운 이웃들이 도움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도 상대방의 허그를 통해 얻으니 1석 3조.


'모금을 할 때, 돈을 만질 때는 나도 믿으면 안 됩니다. 절대 모금된 돈을 개인 혼자한테 맡기면 안 됩니다. 그 혼자가 단체 대표나 모금 담당자여도 말이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야~' '거참 예민하게 왜 그래~'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예민하게 처리해야 하는 돈. 바로 후원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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