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후 2시의 연가>

해양의 드라마가 시작될 시간 알람을 설정해놓은 것이다.

by 박순영

소영은 새벽부터 걸려온 pd의 전화에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방영을 사흘 앞두고 주연배우k가 대마와 프로포폴 혐의로 입건되고 그러자제작국 상부에서는 이번 미니시리즈 방송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소영은 자신이 지지리도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k는 섭외무렵 1,2부 대본을 보고는 자기를 좀 더 부각시키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느라 으름짱과 압력을 넣었다. 해서 소영은 일을 집어치울까 고민도 했지만 이바닥이 한번 팽 당하면 좀처럼 다시 부르지 않는터라, pd와 의견을 조율한 끝에 k의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원고를 뜯어고쳤다. 문제는거기서 끝나지 않아서 k가 공개연애중인 일본 아이돌 여가수가 그만 혐한 발언을 해댄것이다. 이런 문제들로 그의 캐스팅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했지만 그의 동남아 인지도를 고려해 최종 주연으로 발탁한것이다.



소영은 오랜만에 다시 자기를 불러준 cp 에게 보답을 하는 심정으로 극본작업에 정성을 다했고 그 어떤 압력이 들어와도 꾹 참고 최종대본까지 다 넘긴 상태였다. 사전제작이라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음에도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k의 마약사건이 터진것이다. 일각에서는 모 권력자의 불거진 거액의 뇌물수수의혹을 덮기 위해 그 희생양으로 k를 골랐다는 '설'도 떠돌았다. 어찌됐건 소영이 링거를 맞아가면서까지 써낸 그 극본은 유보되고 2주간 파일럿 드라마가 임시편성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된것이다.



"난 왜 이렇게 운도없니"

그날 오후 소영은 마침 오랜만에 메시지를 보내온 해양을 만나 그렇게 토로했다. 그러다보니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 해양과는 20대 후반 처음 방송일을 시작할때 같은 라디오 프로를 썼던 작가친구였다. 그후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둘다 백수가 되자 해양은 남도로의 여행을 제의했고 그렇게 해양의 차에 올라타 둘은 로드무비라도 찍는양 남도로 향했다. 그게 둘이 부쩍 가까워진 계기라면 계기였다 .

그러게...하며 해양은 끌끌 혀를 찬다. 해양은 지금 라디오 특집극 극본을 쓰고 있다고 했다. 여간해서는 라디오를 안듣는 요즘 그래도 소영은 친구의 작품이니 꼭 듣겠노라 약속하며 까페를 나선다.



쏟아지는 햇살속에 방송국 앞 드넓은 광장을 건너자니 소영은 울컥 화가 치밀면서 모든걸 팽개치고 해양과 그랬던것처럼 남도든 동해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그녀의 전세 융자 이자는 하늘높이 치솟고 있고 집주인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해도 먹히지 않는데 여행은 무슨.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야지"라는게 집주인의 대답이다. 이자만으로도 큰돈을 넉달째 물다보니, 집주인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맨 마지막 솔루션으로 남겨두기로 하였다.


어느정도의 인지도가 쌓이면 극본쓰기 전에 계약이란걸 하고 일종의 계약금을 받게 된다.그러면 설사 방송이 지연되거나 엎어진다해도 그리 큰 피해를 보지는 않는데 소영의 경우 단막극 몇개를 쓰고는 pd와의 불화로 3년 넘게 방송국 문턱을 넘지 못한 터라 계약이고 뭐고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재입성한 방송이건만 k의 스캔들로 드라마 방영이 최종 무산된다면 고료는 커녕 일 자체가 끊어질 위기에 놓인 다.




"왜 그랬어요"

소영은 그 다음날 새벽 k에게 메시지를 보내다. 그러나 예상한대로 그에게선 답이 없다. 아마도 다 막아놨으리라...

그러는데 한시간쯤 뒤에 그에게서 답문이 온다.

" 죄송해요 작가님."

그말을 들으려고 메시지를 보낸건 아니었다. 누명이라면 어떻게든 벗으려고 노력을 하든가, 혐한 발언을 줄창 해대는 그 일본 여가수와 손절을 하든가 양단간 결정을 해야 하는터에 그는미안하다는 말로 그 모든 '설'과 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더이상 이 일을 붙들고 있는게 바보같아 그녀는 이쯤에서 손을 놓기로 한다. 소영을 다시 불러준 cp조차 전화한통이 없다. 그러니 소영이 쓴 극본료 12부는 공중분해 해버린 것이다.

피해자는 작가인 소영뿐이 아니었다. 12부 미니에 붙는 스탭이며 배우가 몇인가...그중엔 수십년동안 연극부대를 떠돌다 어렵게 캐스팅 된 노인이 다된 중견도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는 캐스팅 직전 암 판정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 식솔을 건사하기 위해 출연을 마다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품이 '엎어지고'만 것이다...k하나의 부주의와 무책임함 때문에.




그렇게 막막한 시간이 계속되면서 소영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니코틴을 흡입하자 아랫배에 작으나마 변의가 전해온다. 며칠이나 변비에 시달린 그녀는 담배 덕에 조금이나마 볼일을 해결한다. 그리고는 칼국수나 해먹을 요량으로 냉장고를 여는데 딩동, 하며 초인종이 울린다. 소영이 문을 열자 낯이 익은 부동산업자가 서있다. 그옆에 애를 업고 있는 아마도 집을 보러 온 듯한 젊은 여자가 있다.

그래, 집문제가 있었지, 하고는 소영은 자기도 모르게 반색하며 부동산 업자를 맞지만, 그는 조금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연다.

"옆집 보신다는데 문이 잠겨서요...구조만 좀 볼수 있어요?"

그말에 소영은 짜증이 치민다. 순간 한달에 나가는 이자까지 떠올라 "죄송합니다"하고는 문을 그냥 닫아버린다. 그러자 철문 너머 조그맣게 자기를 욕하는 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고 있는데 주방 테이블에 놓아둔 스마트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해양이었다.


"미안해. 너 이럴때 돈 얘기 꺼내서..."라며 해양은 주저주저 말문을 연다.소영은 뭐라 답할 여력도 그러고싶은 마음도 없다. 해양이 돈 얘기를 꺼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해양은 노모와 둘이 살면서 형제들로부터 조금씩 보조받는 형태로 지내오다 작년에 그 노모가 소천하면서 형제들은 동시에 해양에게서 손을 떼는 모양새를 취했고 편집 아르바이트, 간간이 특집 2부작 정도를 쓰면서 버텨온것이다. 해양은 크게 손을 벌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자주 소영의 돈을 받아갔다. 그런데 또 , 하필이면 이럴때 돈을 융통해달라는 것이다.

"내 사정 알면서..."라며 소영은 해양을 원망했다. 그러자 해양은 전과달리 끈질기게 나왔다. "이번 고료 나오는대로 줄게". 당장 밀린 월세를 주인이 채근하니 도리가 없지 않냐는 말에 소양은 하는수없이 현금서비스를 받아 그대로 해양에게 이체한다. 이자는 필요없으니 고료 나오는대로 원금 일체를 달라고..



언론은 배우k의 프로포폴과 대마를 둘러싸고 진위가 확인되지않은 부분조차 연일 대서특필 하고 있다. 안그래도 볼때마다 '뽕한 놈'같았다는 댓글이 자주 눈에 띈다. k가 위법행위를 한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마치 마녀사냥하듯 하루하루 도를 더해가는 비난공세에 소영은 k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모두를 그가 자초한게 아닌가, 하면 조금은 냉정해진다. 해서 메시지를 보내볼까, 하다 그만둔게 여러번이다. k가 소속사를 통해 밝힌것처럼 자신의 실책을 진정 인정하고 모두 책임지겠다는 마음이라면 자신으로 인해 피해받은 모든 부분을 배상해야 한다. 다른 배우들의 출연료와 소영의 고료를 포함한 일체를.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책임과 의무를 행하는걸 본 지가 없는터라 소영은 자신이 쓸데없는 공상을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pd의 말대로 미니시리즈는 '없던 일'이 되고 2주간 파일럿 특집극이 대체 방송되었다.

밤에 잠못드는 날이 많다보니 요즘 들어 소영은 곧잘 낮잠에 빠지곤한다 . 그리고는 그를 만난다. 헤어진 지 한참 된 그를. 꿈속에서 그는 환히 웃고 있다.다 지나갈거라고. 괜찮아질거라고. 그러고는 그는 등을 돌려 다시 길을 떠나려 한다. 그 뒤를 따르며 소영은 가지말라고 외친다. 몇번을 그러다 소영은 꿈에서 깬다. 민혁. 그가 꿈에 나온걸까? 그에게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걸까...이미 다 끝난 사인데 내 무의식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는걸까, 소영은 그게 의문스럽다.





민혁은 건실한 샐러리맨이었다. 토탈 리빙용품을 수입 판매하는 중소기업의 대리였고 페이도 거의 대기업수준에 매달 20일 오전이면 정확하게 입금이 되는 괜찮은 회사였다. 민혁과 소영은 둘다 바람을 맞은 어느 까페의 앞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인연이 닿은 좀 묘한 케이스다. 둘은 동병상련이라고 빠르게 가까워졌고 급기야 암묵적으로 결혼까지 가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런 민혁이 어느날 자기 형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며 돈을 융통해달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으긴 했는데 아직도 5000이 부족하다고 했다. 안그래도 방송일도 끊겼던 시기라 소영도 빠듯했지만 은행 크레딧은 괜찮은 편이어서 돈 5000을 대출받아 그에게 건넸다. 그러나 결과는 돈을 받은 형의 잠적이었다.

애가 타긴 마찬가지인 민혁인지라 소영은 자기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도 할수 없었고 그렇게 둘 사이엔 거리가 생겨나면서 둘의 결혼은 유야무야 돼버렸고 급기야는 헤어졌다. 어쩌면 아무렇게나, 그 어떤 책임도 지거나 지우지 못한채...



그런 그를 꿈에서 보고나자 소영은 안그래도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이 더해지는것만 같다. 더이상 출구가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스치고, 생존이란게 기생하거나 무자비한 억압 속에 이루어진다는 네거티브한 느낌만 든다. 패러사이트 당하는것도 일종의 억압이라면 억압이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폰 배터리를 계속 충전해가면서 소영은 민혁으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다. 괜히 꿈에 나왔을리 없다는생각을 하면서. 기필코 그로부터 기별이 올것 같다는 예감.



그리고는 사흘후, 정말 민혁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니 돈 5000을 갚게 됐어라며.소영은 아침일찍 그 전화를 받고 긴가민가 했다. 다짜고짜 돈얘기부터 하는 민혁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헤어진 이후 그로부터 걸려온 처음 전화였기 때문이다. 민혁은 계좌번호를 달라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그를 보고싶다는 마음에 소영은 "우리 만나서 얘기하면 안될까?"한다. 그러자 민혁이 주저하는 듯 짧은 숨소릴 내다가 "나 결혼해 다음달에...만나는거야 할수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헤어진 이후 소영이 애면글면 하는 동안 민혁은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떻게 마련했는지 돈은 돌려주겠다고.그럴거면 왜 다른 여자와 결혼하냐고 소영은 그를 몰아세우고 싶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아닌가..


"이건 정리하고 결혼해야 할거 같아서 "라며 마주 앉은 민혁이 돈 5000이 든 흰 봉투를 소영앞으로 민다. 순간 소영의 머리를 스치는 건 '어긋남'이란 단이다. 늘 세상과 소영은 어긋난채 살아왔다는생각이 든다.

"결혼...축하해"

" k기사 봤어. 니가 재기하는줄 알았는데..암튼 힘내"하고는 민혁은 목이 마른지 커피 대신 그 옆에 놓인 물만 연신 들이킨다.



그러는 민혁에게서 소영은 시선을 돌려 유리문밖을 쳐다본다. 12부 고료는 받지 못했어도 그에 상당하는 자기 돈은 돌려받았다는게 조금은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온통 '기생하고 폐를 끼치는 인간들'로만 차있는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정리차원에서든 의무라고 생각해서든 자기 돈을 돌려준 민혁이 한없이 고맙다. 예의 그 '샤프한 미덕'을 여태 간직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그날따라 햇살이 유난히 눈이 부시다. 사람들은 손차양을 하고 바쁘게 까페 앞을 오간다. 민혁과 소영도 그렇게 나란히 거리를 걸은적이 있다. 한손으로 해를 가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서로의 어깨며 허리를 안고 .


그러고 있는데 소영의 폰 알람이 울린다. 보면 정각 2시다. 그리고 '해양이 특집극'이라고 메모돼있다. 해양의 라디오 드라마가 시작될 시간이다. 뭔뎨? 궁금해하는 낯빛으로 민혁이 물어온다. 아냐 아무것도...그리고는 소영이 자리를 뜨려하자 민혁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너무 미안해서 연락못했어 그동안 "

"그렇다고 결혼은 너무한거 아냐?"

"너만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

소영은 바깥 거리가 어지간히도 더울거라는 생각을 한다. 자기만은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민혁을 남겨둔채 그녀는 까페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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