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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휘 Mar 01. 2024

보부아르처럼 늙어가야지

나이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 정치적, 지적, 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시몬 드 보부아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에서>



우리는 노년과 정면 충돌한다

어느 날 시몬 드 보부아르는 거울 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의 나이 쉰한 살. 보부아르는 거울 속 늙은 여자를 보면서 "내가 여전히 나이면서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보부아르는 미래지향적인 실존주의 여성이었다. 언제나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탐험하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보부아르는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로 되돌아가는 역주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나이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죽음보다 나이 듦을 두려워했다.

내가 보부아르에게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쉰한 살에 노화로부터 결투신청을 받은 보부아르는 예순셋에도 여전히 자신의 나이를 낯설어했다.

보부아르는 우아하긴커녕 나이와 싸우면서 억지로 나이 들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들은 사실 인성의 문제라고 했다.

키케로는 '노년'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유일한 철학자였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나이 듦이나 노년보다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노년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듣기 좋아지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더 즐거워 진다고, 지식과 배움에 시간을 쏟는 한가한 노년이야말로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키케로의 노년예찬에 대해 보부아르는 "그건 개소리"라고 했다.

보부아르는 키케로가 노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침내 "키케로, 네가 잘못 알았어. 네가 틀렸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겠어" 하며 노년을 똑바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정말 보부아르는 끝내 '노년'에 대해 부정적이었을까?



보부아르의 '노년'

보부아르는 예순 살에 마침내 <노년>이라는 책을 쓰게 된다.

무려 585쪽에 달하는..

그 책에서 보부아르는 끊임없이 노년을 ‘천천히 죽어가는 암울한 시기’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흐려지고 고요하게 수용하는가 하면 심지어 즐거움으로 바뀌어갔다.

직시한 노년에 대하여 보부아르는 열 가지 정도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과거를 받아들일 것, (지나치게 과거의 회상 속에 빠져있지 않는다면 과거는 현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보부아르는 풍성한 과거가 없는 현재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친구를 사귈 것, (보부아르는 마흔 살 어린 친구와 우정을 통해 활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타인과의 관계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라고 말할 만큼 나이가 들수록 친구 사귀기를 권한다.)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호기심을 잃지 말 것, (보부아르는 쉰 살에 관심 없던 것이 예순 살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보부아르는 20대보다 70대에 정치적으로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늙어가면서도 정성스럽게 살다가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등등..





내가 보부아르에게 꽂힌 것은 마치 내 마음을 읽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나는 지금 쉰 살이다. 마흔아홉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쉰 살이라고 하니 부쩍 나이가 들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늙지 않았다.


보부아르는 쉰한 살에 거울 속에서 늙은 여자의 모습을 보았지만, 보부아르의 세상보다 훨씬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거울 속에서 늙은 여자를 발견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내 모습은 보인다.

눈가에 주름이 많이 늘었고, 슬슬 피부가 처지기 시작했으며 v라인은 U라인이 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네모가 되려나..


나도 사실 죽음보단 늙음이 두려웠다. 나는 안 늙을 것만 같았는데,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느새 나도 늙어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속상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보부아르처럼 예순 살에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이 얼마나 많은 상실감과 무기력감을 가져다주는지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와 정면 충돌한다.

누군 살짝 비껴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정면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나만 늙어간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순차만 있을 뿐이라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예찬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보부아르처럼 노년을 부정하는 눈에서 점진적으로 즐거운 시간들이라고 생각을 변화시키게되는 일,

그건 나이라는 숫자나 노화라는 물리적인 현상이 아닌 자연의 섭리에 따른 국룰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거지.

내가 나이가 들어 늙었어, 이제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 그런데 계속 나이 먹은 것에 대해 징징거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긍정의 마음으로, 뭔가 더 생산적이고, 하나라도 남는 장사를 해야지.

보부아르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답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해서 즐겁게 잘 나이 드는 법에 대한 방법을 열 가지 정도로 정리를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이 든 내 모습은 상상조차도 안 했지만, 그럼에도 막연하게 그려본 것은

'나이 들어도 퍼지지 않을 것이다'였는데 세상은 역시 그리 만만치가 않다.

퍼지기만 했을까, 옷도 세상 편한 추리닝만 찾고, 멋은 내본 적도 없는 여자가 되어간다.

절대 그렇게 늙지는 말자 했던 모습으로 늙어가는 걸 보니 화가 나야 하는데 왜 실실 웃음이 날까.


나도 뾰족한 보부아르에서 동그란 호호할머니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내 나이 오십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감사한다.(사실 오십이면 애기지 애기~ 하하)

심지어 시작하기에도 늦지 않은 나이라는 사실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보부아르가 현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나이가 들어도 지식과 배움은 멈추지 말아야 하고, 보부아르가 말한 것처럼 프로젝트를 추구하자.

함께 늙어갈 좋은 친구들을 만들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가질 것이며

가끔 화려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인생의 부조리를 받아들이자.


나는 사실 나의 어린 아들이 성인이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때 내 나이는 예순이 되겠지만, 그때의 내가 얼마나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지,

온하늘을 휘저을 그 날갯짓이 너무도 기대가 된다.

그때의 나를 준비하는 오십의 나는 여전히 할 일이 많고 바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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