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후반에 미국 석사 유학을 떠났다. 비 전공자로서의 영어교육 대학원 진학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해외 업무 경험과 상위권 어학성적표가 있었기에 유학의 시작이 비교적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했다니 얼굴이 다 빨개진다.
같은 영어라고 해도 생활영어와 업무 영어 그리고 입시영어가 다르다는 건 유학 전에도 알았다. 그럼에도 대학원 첫 학기 부진한 성적과 빨간펜으로 도배 된 리포트는 여러 번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험 영어 고득점도 해외 업무 경험도 외국인 선생님의 침에 바르던 칭찬도 다 거짓 같았다. 내가 유학을 왔다는 것 자체가 용감해도 보통 용감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무지한 사람이 얼마나 용감할 수 있는지를 그때의 내가 증명하는 듯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writing 과 discussion/ debate였다. 영어를 사용하기만 했지 영어로 뭔가를 깊게 파 본 적이 없던 나는 미국식 학습법부터 다시 배워나가야 했다. 하나의 리포트를 쓰기 위해 기본 7개의 리딩을 마치고 핵심을 요약한 다음 내 생각을 덧대어 완성하기. 출처를 밝혀도 리딩에서 인용된 소스는 반드시 paraphrasing을 한 후 리포트 제출 전 Turn It I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 소스 이용률이 얼마나 되는지 점검하는 것까지. 리포트 제출 하나에 이렇게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제대로 배웠다. 기본 리포트 작성 하나가 그렇고 대학교 대학원의 모든 과제가 이렇게 writing의 형태로 제출된다. 암기로 절대 승부를 볼 수 없다. 소스 인용만 하면 paraphrasing을 해도 표절이다. 내 생각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critical thinking이 필요했다.
지금은 한국의 학원에서도 어릴 때부터 이 같은 학습 방법을 도입해 공부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그때는 내 뒤에 유학 오는 후배들이나 세대들은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부터 영어 교육에 대해 고민이 더 진지하고 깊어졌다. 그때보다 시대는 더 글로벌 해졌고 영어는 학문으로서의 언어과목의 역할을 훌쩍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기에 습득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필요에 따라 학습과 사용방법이 달라져야 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한 번 마스터하고 놓는 학과목 공부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