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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Jun 13. 2022

당신은, 층간소음에서, 자유한가요?(2)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서 장작 1년 6개월을 옆집들과 옆집 윗집들이 서로 시끄럽게 소리내느라 낮밤 가리지 않고 내는 큰 소리에 (참다참다 경비실 통해 물어보면 항상 자기네들은 조용히 있다고 한다. 

녹음을 해도 그쪽에서 발뺌하면 증명할 길이 없다.) 잠도 잘 못 자고 시달리며 살았었다.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틈틈이 부동산 검색을 하고 직접 찾아가 보기도 여러 번. 

드디어 마을 전체가 고요해보이고 전세 가격도 나쁘지 않아서 도망치듯 이사온 이 시골 마을.     


이 마을의 어여쁜 새소리와 맑은 공기 속에서 평안하게 산지 딱 2주 되던 날.     

옆집에서 우리 집과의 전쟁을 알리는 소리없는 선전포고가 시작됐다.


우리집 왼쪽 옆집 중년 부부는 초반에는 우리집 오른쪽 빈땅(을 우리가 이사오기 몇달전에 샀다고 한다. 우리집이 옆집의 왼땅과 오른쪽 땅의 가운데에 끼어 있게 된 모양새다.)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며 돌멩이를 걸러냈고, 그 다음에는 일요일 새벽 7시반부터 포크레인을 불러서 3시간 넘게 밭을 갈았다. 공사장에서 나는 그 굉음소리가 우리집 얇은 벽을 뚫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이 와서 농사일하는 소음의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게 남아있는 것은 1년 6개월간 서울 아파트를 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웃들에게 직접 편지, 인터폰, 집앞에 찾아가기, 아파트 동대표와 연락, 경비실, 관리사무소, 구청, 경찰서 등에 전화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 '두툼한 마음 근육'뿐이었다.     




꽃이 만발한 봄날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은 시간.

그날도 옆집 중년 부부는 친구들을 불러 우리집 왼쪽 집마당과 오른쪽 새로 경작한 땅을 둘러싸고 크게 수다를 떨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일주일에 3~5일 정도는 친구들을 불러야 직성이 풀리시는 부부였다. 이사온지 한달 정도 지났으니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법하건만 공부를 해야 하는 나는 또 더듬이가 곤두섰다.


아침 일찍부터 차 3대가 옆집 주차공간, 사실상 우리집 바로 앞에 들이닥쳐서 문 닫는 소리에 깨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우리집 부엌과 가까이 있는 옆집 마당의 원두막에서 믹서기를 갈고 아궁이에 불을 떼서 솥을 팔팔 끓이며 수다 떠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우리집 오른쪽 밭에서는 아저씨들이 밭에서 망치질을 하고 계셨다.      

저번엔 친구분들 2명을 불렀는데 이번에는 부부동반으로 총 8명이서 3일간 옆집에서 자면서 밭에서 쇠막대기를 탕탕탕 망치질하고 6~7시간동안 마당에서 있는 힘껏 하하호호 웃음 소리를 내며 수다를 떠셨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인해전술’ 같아 보였다.


‘결국 또 이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어디 한번 해봅시다!’


참을 만큼 참았으니 이제는 나도 강하게 나올 차례였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자녀인지라, 일단은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폰으로 작게 찬양을 틀고 기도를 했다.     


‘주여! 저들을 어떻게 하리이까! 주님~저를 건지소서! 지켜주소서! 저를 이곳에서 보호하시고 살려주시옵소서! 며칠째 탕탕탕거립니다. 저거 보십시오. 깔깔 거리고 소리를 크게 낸지 몇시간 째입니다. 이제는 주님이 혼내주소서! 주여~!’     


그래도 소리가 멈추지 않을 때 이전 아파트에서도 네 다섯번 시도한 적 있었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진심으로 찬양부르기'다. 사실 전원주택에 가면 마음껏 교회 영상 틀어놓고 찬양을 부를 수 있을 거란 로망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별로 없고 집들도 띄엄띄엄있으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옆집 마당에서 하는 전화소리가 우리집에서 다들리는 것을 느끼고는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속시원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리! 

'옆집 소음에 비하면 나도 한번쯤은 이래도 되는 거 아냐?' 하면서도 양심상 창문은 열지 않았다. 

(어짜피 창문이 그동안 옆집 개짖는 소리도 걸러주지 못한 것을 알기에 옆집에서도 잘 들렸을 것이다.)


크게 노래를 부르니까 움츠러들기는커녕 옆집 아주머니의 하이톤으로 수다떠시는 소리가 더 커진다. 

한 30분 됐을까. 내 노래가 멈출 줄 모르니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옆집에 들어간 것이다. 그후로 20분 정도 더 노래를 불렀다. (내가 틀어놓은 찬양곡 영상이 50분짜리라서)


그날은 그렇게 좀 마무리가 되는가 싶은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벽부터 말하는 소리, 웃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통 옮기는 소리 등등이 들렸다. 나도 참 어지간히 이웃 배려를 안하는 분들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신축빌라와 새 아파트를 거치면서 언제부턴가, 내 기도의 대부분은 이런 기도였다.

  

‘주여, 이웃들이 조용히 하게 해주시옵소서! 

지켜주소서! 저를 보호해 주시옵소서! 잠 좀 자게 해주소서! 

옆집 소리에 생활이 안됩니다! 옆집의 윗집이 발망치를 밤새 해서 옆집이 반격하느라 문을 쾅 닫습니다. 

주여, 너무 시끄럽습니다. 제발요 주님~!! 이웃 사이에 제발 배려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주님은 바로 답을 주시지는 않았다. 


하나님께 이제는 너무 지쳐서 공부 따위 그만하고 그냥 쉬겠다고, 내일까지도 시끄러운 소리가 새벽에 들리면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기도했던 2번 모두, 다음날 설교를 통해 ‘끝까지 일어나서 버티라!’, ‘낙심한 게 있다면 다시 시작하라!’목사님 말씀을 듣게 하셔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하실 뿐이었다.     

 




가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투쟁해야 하지?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되었지? 언제까지 이런 기도를 해야하지?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집이 이렇게 없는걸까?


편안한 집에서 임신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싶은, 내게 현실의 집은 너무나 가혹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심한 것 같지 않은데 나만 왜 이렇게 평범하지 않게 살지?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뉴스에서도 꽤나 많이 다뤄졌는데 그동안 공감을 못해서 지나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매일 매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에 조금은 위로도 되었지만 참 많이 처참하게 불쌍했다. 나처럼 말이다.      


사실 지금도 악몽같은 꿈속에서 간신히 좀 깬 느낌이랄까. 다행히 악몽은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언젠가 정말 좋은 이웃과 튼튼한 집을 만나서 이 고통을 기억못하기 전에 꼭 기록하려한다.      


세상에 큰소리로 외쳐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엉터리로 지은 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이런 일에 힘 빼고 시간 소모하고 우울해하며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건 너무 한심하고 슬픈 일이지 않은가? 국가 차원의 낭비다.     


그런데도 묻혀지고 잊혀지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한조각 떼내어 공유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누군가는 근본적인 원인인 ‘건축법’부터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증거자료로 이 기록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을 몰라서 층간소음을 당하는 건가 싶어 건축법 내용도 조금 들어있는 ‘민법’을 공부하고 회사에서 계약서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회복하고 싶어 시작한 공인노무사 공부. 


3달 만에 노무사 1차를 작년에 합격하고 2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인 2차 시험이 이제 100일도 안 남은 이 시점에 공부를 살포시 뒤로 미뤄놓고 이 에세이를 쓰는 건 (결과적으로는 2차시험을 접수도 하지 않고 중도 포기해버렸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마도 내가 노무사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문제를 글로 생생하게 남겨서 공유하고 문제화시켜서 더 늦기 전에 더 이상 집 문제로 피해 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면 보람도 있고 좋겠지만 30대 후반이라 그런건지, 

층간소음으로 뇌가 무뎌졌는지 공부한다는 게 마냥 쉽지는 않다. 


그동안 노무사 공부는 어느 정도 배웠으나 암기도 힘들고, 2차 시험에 올인하기 힘든 ‘즈질 체력’이다. 

더 늦기 전에 임신 준비도 해야 하니 노무사 2차 시험을 본 후까지 에세이 쓰기를 미루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층간소음 에세이를 쓰면서 처음 컨셉은 소설 형식으로 써볼까 고민해봤다. 그런데 소설이 되면 과장도 하고 가감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냥 우리나라 서울과 경기도의 신축빌라, 아파트와 전원주택을 살면서 느낀 현실을 거의 99%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야 훗날 주택에 관한 법을 만들 때도 사회의 지도자들이 혹시 내 글을 보고 잘 반영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의 지난 3년~4년을 간추려서 녹여보려 한다. 좀 황당한 일도 많이 겪어서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이상한 일을 많이 겪었어?’라든지 ‘좀 귀가 많이 예민하구먼.’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난 귀가 밝긴 하지만 비싼 집이나 큰 집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자연의 소리가 있는 평안한 곳에서 아기를 가지고 출산하며 남편과 오순도순 살고 싶은 행복한 꿈을 꾸는 대한민국의 30대 여성 중 한 명일 뿐이다.


우리집 소리가 남에게 잘 안들리고, 남의 소리도 우리집에 잘 안들리는 튼튼하고 평온한 우리집에 살고 싶다는 꿈. 그 꿈을 함께 이루기 위해 동참해 줄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언젠가 법이 바뀌고 건축설계와 자재가 바뀌고

층간소음을 문제화해서 튼튼하고 방음이 잘 되는 집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가 생기고

이 문제로 상처받은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할 곳과 사람들이 많이 생기길 간절히 소망한다.  


 


♡시편 37장 4~6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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