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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Nov 02. 2024

육아도 모순이다

잘 키운다는 모순

아이가 원하지 않아 학원을 다 정리하고, 집에서 수학문제집을 푼다. 영어는 하루 2시간씩은 꼭 책을 읽고, 듣는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이가 원해서도였지만, 내 나름의 교육철학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가 당장 봐야 하는 시험이나 앞으로의 성적보다는 아이 내면의 성장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서 짜여진 지식을 넣는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느리더라도 스스로 계획하고, 학습하는 경험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더 보태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솔직히 말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게 이 엄마의 욕심이기는 하다.


이게 정말 큰 모순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는 것. 특히 이런 방법으로 입시에 성공한 후기를 보면 우리 아이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내면의 성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많이 읽어 둔 책 덕을 성공적인 입시로 보고 싶어 하는 게 어쩌면 더 본질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성장이 우선이었다면 아이가 수학문제를 붙들고, 끙끙대고 있을 때 욱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을 때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은근히 내가 선택한 방법이 나중에 있을 입시에서 실패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읽기만 해도 될까. 이제 학원에 좀 보내야 되지 않을까. 문제집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 늘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아이 내면의 성장보다는 입시 쪽에 가깝다. 물론 꼭 어느 한쪽만을 위해 방향을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성장 뒷면에는 입시가 있고, 입시의 뒷면에는 아이의 성장이 있다고나 할까.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_303p 작가의 말


어쩜 이렇게 제목을 잘 지었을까. 삶은 정말 모순일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평탄하고 재미없는, 소설 속 인물로 따지자면 안진진 보다는 주리 쪽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왔다. 나쁜 것으로 보이는 모든 일의 이면을 보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야 비로소 '안진진'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 있었다. 227p


이제야 조금씩 진실을 배워간다고나 할까. 육아도 열심히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육아도 시간투자와 비례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따지면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늘 아이와 붙어 지내는 나 같은 전업주부가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하는 게 맞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애초에 그 '잘' 키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던 것이다. 몸에 좋은 재료로 매번 집밥을 해 먹이는 게 외식을 자주 하는 것보다 잘 키우는 걸까. 엄마가 붙어 앉아 일일이 아이 공부를 봐주는 게 학업에는 일체 관여를 안 하는 것보다 잘 키우는 일일까. 늘 감정을 자제하고, 아이 말을 경청하는 것이 고집스러운 훈육보다 잘 키우는 걸까. 도저히 흑백논리로 따질 수 없는 것들이다. 외식을 하든 집밥을 먹든 그날 나눈 대회나 식사분위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감정이란 것은 정말이지 복잡하고 미묘해서, 말하자면 화를 낸다고 다 같은 화가 아니고, 자제를 한다고 해서 다 같은 자제가 아니라서 이렇다 저렇다 판별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삶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정답이 없는 게 육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안진진의 아버지는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린 것도 모자라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누가 봐도몹쓸 인간이다. 그렇다고 안진진이 잘 크지 못했는가 하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가장의 역할을 다하는 아빠가 있었다면야 더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 수는 있었겠지만, 인생 부피로 따지면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229p


그렇다고 안진진처럼 크길 바라느냐 하면 솔직히 아니다. 할 수 있는 한은 사랑을 주면서 여전히 필요하면 육아서적과 유튜브를 뒤지면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아이가 단단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을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잘 조절하는게 숙제다. 주리 엄마, 안진진의 이모와 이모부가 그랬던 것처럼 좌절과 실패를 성실하게 방어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젓갈이나 장아찌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방법들을 주리는 애시당초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228p


그런데 그게 또 말이 쉽다. 아이가 웬만한걸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지만, 때로는 느릿느릿한 아이의 행동을 기다리지 못해 먼저 입을 옷을 꺼내 놓고, 물병에 물을 받아 놓는다. 친구에게 모진 말을 듣고, 속상해 눈물 흘리는 아이를 보면 당장에 그 아이를 불러내 한 소리 해주고 싶은 맘을 꾹 눌러내야 한다. 지금의 좌절이야 이 정도지만, 훗날 어떤 크기와 무게의 좌절을 겪게 될지 모를 일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고, 남편의 수입이 끊기거나 누군가 갑자기 아플 수도 있다. 그땐 같이 주저앉자 울지 않고, 안진진과 주리의 이야기를. 안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꼭 들려줄 것이다. 아니 이 책을 읽어 보라고 해야 하려나.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295p

기껏해야 손톱만 한 불행들이 조금 있을 뿐인 지금 내가 이 책을 읽어둔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단호한 육아 스타일로 유명한 조선미 교수님의 말씀을 늘 새겨왔지만, '모순'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런 자세의 필요성과 의미를 절감했달까.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그것을 감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 저자 조선미


내면의 성장이든 입시든 결국 아이 몫이다. 혹여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아이 몫이고, 아프고 다치면서 성장해 가는 것도 아이 몫인 것이다. 나의 몫은 사랑, 그거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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