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해나 Sep 21. 2024

#혜화역_시위

살아준 한국 여성들에게

정신과 약을 잊고 잠에 들어서 그런지 혜화역 시위 당일날 새벽 5시에 깼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그냥 자지 않기로 마음먹고, 예전부터 썼던 글을 공모한다고 빠른 시간 안에 써서 드디어 글을 완결을 냈고, 맞춤법을 수정했다. 수필은 몇 만자가 쉬운데 소설을 쓰는 건 시간이 훨씬 걸려서 4만 자 정도만 됐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그래도 완결을 냈다는 것에 충족감이 존재했다.


짐을 챙기고 혹시 내가 당일치기를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 여분 옷도 챙기고 카톡에 시위 짐 정보를 공유해 주신 분 도움을 받아서 긴 옷과 보조 배터리 같은 여러 물품도 챙겼다. 여유 시간을 생각해서 출발했고 강풍을 뚫고 택시를 타고 지연되었던 기차를 겨우 탔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는 입석 시스템이라고 좌석 없이 가게 되어서 사람들은 계속 지나다니고 내가 있는 근처 문은 열리고 닫혀서 에너지 소모가 심했지만 그 순간에도 오늘의 모든 이동 시간에 수필을 계속해서 쓸 수 있어서 좋았고, 다시 혜화역으로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고 보니 서울로 오기까지 대략 7시간이 걸린 듯했다.


혜화역에 도착하니 경찰이 많았고 딥페이크 처벌 시위 화면이 크게 보였고 심장이 쿵쿵 댔다. 택시 기사 분은 무슨 행사하냐고 그것 때문에 왔냐고 물어서 나는 거짓말하기 싫었기에 네라고 한 마디하고 택시에 내렸다. 그리고 검은 여자들 속을 걸어갔다. 내 학교에는 대부분 나밖에 없었던 쇼트커트가 여기에는 주류였고 젊은 여성이 많았지만 다양한 여성이 끝없이 계속해서 들어와서 도로 바닥에 방석을 펴고 열대로 앉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한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다. 역사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 탈코르셋을 하고 몇 년 넘게 페미라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때는 어려서 유명한 불용 같은 시위를 가지 못했고, 최근에 했던 다른 시위는 신상이 노출되기 쉬운 장소에 있어서 두려워서 가지 못했지만 이 시위는 무엇보다 가고 싶었다. 내 첫 시위였다. 나는 분명히 누구보다 페미니스트인데 다른 사람보다 행동력이 적었다는 것에 속상함을 느꼈고 지방에 살고 좁은 커뮤니티 속에 있기에 고립감과 무기력함과 조금이라도 나를 드러내면 위험할 것 같다는 신상 정보의 위험을 쉽게 느낄 수밖에 없었으나 이런 대규모 시위, 몇 년 만에 열린 시위, 페미니스트인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시위, 내가 더는 미루면 안 될 행동이라고 느꼈다. 나는 어느 단체에 속하지도 않는 페미니스트였기에 더 여성주의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고 그래서 더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기도 했다.


최근에 여러 일이 많았지만 이 시위를 가지 않을 생각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요즘 일상이 불안감과 떨림이 높아서 서울이라는 장거리 이동과 많은 사람, 체력 소모가 심한 곳에 가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딥페이크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구호를 수십 번 목이 터져라 외치고 함성을 지르고 화를 터뜨리면서 이 여성들이 내게 있다고 알리는 모든 감각을 느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을 느꼈다. 우리는 모두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쳤다. 여성을 죽이는 사법 체계를 바꾸라고. 세상은 우리가 있기에 더 낫게 변화할 수 있다고. 연설을 듣는데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가 절반 넘게 10대 남자였다는 사례,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가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례, 딥페이크 성범죄가 절반 정도가 집행 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판결,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는 피해자가 몇 년이나 넘게 가해자를 봐야 하고 피해자가 전학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례, 한 여성 청소년이 시위를 나오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으면서도 이곳에 나와서 여성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더 믿게 됐다는 자유 발언에 전부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지나치는 행인 중에는 여성 어린이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범죄가 얼마나 빈번하고 피해자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가해자 남성은 지금도 성범죄를 저지르며 여성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하게 숨 막혀서 고개를 숙이고 자유 발언을 들었다.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감정이었다. 오늘 시위를 가기 위해 갔던 역에서 화장실을 갔다. 거기에는 열 개가 넘는 구멍들이 있었고 여자들이 막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하얀색 무언가 들로 막혀 있었다. 벽 밑에 불법 촬영을 감지하는 기계가 있다는 스티커가 있었다. 나는 내가 역 화장실에 갔다는 이유로 지금 내 불법촬영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패닉이 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역사에 있었다. 내게는 나를 도와줄 여성이 있었다. 매일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여성이라고 폭력을 저지르고 강간하고 살해하고 신상 정보를 퍼뜨리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연설하셨던 분의 말처럼 시대는 우리로 인해 천천히라도 너 낫게 변하고 있었다. 많은 여성 단체가 여성을 돕고 많은 여성이 여성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생생하게 여성 폭력의 사건을 내 일이라고 느끼며 여기 있는 여성 모두의 심리 상태를 걱정했다. 나는 기사를 잘 보지 않을 정도로 여성 폭력이 내게 깊이 감각되어 버거운데 나보다 더 심하게 아프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매일 그것들을 찾고 읽으면서 커다란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나도 자유 발언을 신청해서 여성의 정신 건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여성들이 여성 전문가 선생님을 만나서 여성 혐오적인 사회가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빈도가 많다는 걸 이야기하고 지금 나의 정신 건강 상태가 어떤지 진단받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면 약을 먹기 시작하고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인권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가장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서 여성을 도울 수 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신뢰되는 여성 전문가와 심리 상담을 모두 해야 했다. 사회가 여자를 죄책감과 불안과 강박을 감당할 수 없이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는 만큼 여자는 반드시 상담 센터나 정신과에 가서 심리 상담이 필요했다. 우리는 지금 여성 폭력 강간 사회에서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분노는 합당하고, 그와 동시에 가장 중요한 건 여자가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자인 나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주변을 찾아보면 내 생각보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전문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무섭겠지만 한 번 찾아가기 시작하면 다른 전문가를 추천받을 수 있고 다른 정신과나 상담 센터도 방문해 재상담을 받고 나에게 맞는 전문가와 유대를 쌓고 상담을 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 마음을 현재보다 더 치료할 수 있다 분명히.


한국 사회에 있는 여자의 정신이 가장 위험한 시기다. 우리는 모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 내 상태를 진단하지 말고 여성 전문가를 찾아가서 상담을 시작하고 내게 맞는 약과 전문가를 찾아가서 나를 치료해야 한다. 우리는 덜 아프고 더 행복해져야 한다. 여자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자인 당신이 가장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힘든 사건에 거리를 두고 심리 상담을 하고 내가 지금 자책하고 있지 않은지 재고해 보고 내가 나를 챙겨야 한다. 나만이 나를 챙길 수 있는 일이 있다. 전문가를 찾아가는 일도 그런 것이다. 잠을 일찍 자려고 하고 운동을 가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일이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매일매일 절실하고 신실하게 바란다. 더 많은 여자들이 대화가 잘 통하는 전문가를 통해 심리 상담을 받고 정신이 건강해지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해 가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두고 안전한 일상을 살아가기를. 이 한국 사회에서 당신이 건강하기만 한 것으로도 당신은 위인이다. 당신에게 무엇보다 감사하다. 우리는 생존자지만 앞으로는 생존뿐만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누리고 환희를 감각하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일상을 살기를 바란다. 여성의 정신•신체 건강과 안전만큼 창대한 일은 없다. 당신이라는 여성이 여기까지 도달해 살아 주었다는 것에 대해 끝없이 감사하다. 앞으로 더 나아지고 좋아질 것이다. 당신은 무수한 잠재성과 지성과 가능성을 가진 여성이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고 그들은 우리 생각보다 약하다. 우리가 강하게 자기 주장하고 의견을 피력해도 상상한 것만큼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보다 강하다.


내일은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페미니스트 여성과 가보지 못했던 세계를 여행하고 절실하게 필요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미미한 농담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웃을 것이다.


















이전 01화 글로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