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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나 Sep 20. 2024

글로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

9000자 - 다층 소수자와 이야기

제가 할머니를 데리고 가기 위해 정신과 예약을 잡아놓은 가장 큰 동기는 남동생 때문이었어요 정확히는 20일에 남동생과 평생 처음 했던 대화였어요 저는 20살이 된 후로 2년 동안 지금 타지 대학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2년 전에 다른 곳에서 상담을 하면서 할머니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상담할 수 있는 곳에 데려오고 싶었는데 제가 설득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못 데리고 왔어요


저는 다른 일로 바쁘게 살다가 그걸 잊고 있었는데 아빠가 제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추석에 와달라고 전화로 저를 달랬어요


그래서 저는 18일에 가족 일정이 다 끝나고 집에 있을 때 집에 오랜만에 가서 엄마와 남동생과 점심을 먹다가 남동생과 논쟁을 하게 됐는데요 저는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고 남동생은 돈이라고 논쟁을 했는데 남동생은 가난 때문에 비참했대요


그리고 비참한 이유는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봐야 하고 그 사람은 누나인 저였대요 저는 평생에 남을 충격을 받았습니다 티격태격하던 관계 정도라고 생각만 했어요 둘만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엄마를 차에 보내고 식당에서 둘만 대화를 시작했어요


남동생은 남자 막내라 저보다 사랑을 더 받아서 어릴 때 제가 그게 싫어서 남동생에게 계속 정말 많이 많은 말을 하고 화를 내면서 걔를 괴롭혔대요 걔는 2살 어리고 할 줄 아는 말이 없어서 몸이 컸을 때는 저를 몸으로 제압하기만 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항상 제가 말을 많이 하고 이기면서 제 자존심을 채우니까 남동생은 그걸로 살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대요


근데 제가 가족과 모두 싸우고 큰 소리로 화내면서 상처되는 말을 많이 하고 성격이 나빠지고 그런 부분을 일정 부분은 이해한대요 예민한 시기에 남자 자체를 증오하게 된 이유가 아빠의 가부장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대요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우리 부모님은 항상 돈 문제로 싸웠는데 자기가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남동생은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대요 그레사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못하는 약한 존재였으니까 점점 커가면서 운동을 하면서 강해지려는 동기가 커졌대요 그래서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20살 되고 바로 현장직 취업을 해서 바깥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있어요


동생이 엄마에게 했던 말처럼 엄마는 비교 대상이 옆집 철수 같은 주변인밖에 없지만 저와 같은 우리 세대는 인터넷이 있어서 배울 수 있는 게 많고 성인이 되고 사회화도 하게 되었대요


동생의 말을 정리하면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가난으로 비참한 이유는 싫어하는 사람인 나를 계속 봐야 했던 건데 내가 그렇게 성격이 된 이유는 부모님인데 부모님이 돈 문제로 평생 싸웠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약한 존재였다 그래서 돈이 가장 중요하다


동생은 그럼에도 제가 성격이 나빴던 이유를 전부를 모르지만 일정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동생은 세상 이야기를 보면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 자신이 세상에서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가장 남길 수 있는 건  오직 대를 잇는 거라고 생각을 했대요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대요


그러다 저는 아이를 절대 낳고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하고 일정 이유를 말했는데 동생은 그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말했어요 동생은 아빠도 할머니도 원하는 일이니까 아이를 키우고 싶대요 그리고 동생은 엄마 아빠가 아파도 그렇게 슬프지 않대요 공감 능력이 원래 많이 없대요 자신이 경험한 것에만 공감을 하는 편이지만 사회화도 하고 배우기도 한대요


그리고 제가 아직 싫대요 저는 가족을 대할 때 목소리가 크고 시트콤처럼 억지 텐션을 쓰고 이유를 덧붙여서 말을 와다다 쏟는 성향이고 우리 집 모두 고집이 세지만 저는 아빠처럼 한 번 옳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굽히지 않는 편이라 성향 자체가 안 맞는대요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쩌면 내가 남동생에게 부모 같은 존재였구나 강자의 위치에서 가해자였구나


그래서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장문의 메시지를 몇 천자 썼어요 요약하자면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라 뚱뚱하다고 외모 평가를 또래와 가족, 심지어 길거리 사람한테도 자주 당했고 내가 보기에도 내 얼굴이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자기혐오를 매일 했고 죽고 싶어 했다


집에서 가족과 싸울 때면 울면 울지 말라고 윽박지르는데 그 소리가 너무 싫어서 내가 표출하는 건 화내기밖에 없었고 또래나 다른 관계에서 말투가 의도치 않게 공격적이게 되어서 늘 부딪혔다


나는 누가 내 외모를 평가하고 내 몸이 흔들리는 게 불쾌해서 집에 틀어박혔고 모든 가족의 방 하나조차 없고 90년대에 지어져서 보수 공사도 안 된 환경의 단독 주택의 나쁜 집을 바꿀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무력감을 느꼈다


거의 평생 아빠를 증오하고 적개했다 지금도 아빠에 대한 강압적 트라우마가 심하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시대 상황과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 안다 그래서 나도 아빠를 사랑한다


엄마는 더 복잡하다 여성 인권에 대해 인지하면서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가 행복했을 텐데 죄책감을 느꼈고 엄마는 매일 저한테 친정 문제를 얘기하는데 제가 그 말을 받아주지 않으면 "너만이 딸로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네가 잘못됐다"는 말을 듣고 제가 이혼하라고 하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 됐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22살인 지금까지 평생 그랬다



나는 성인이 되고 더 공부를 하면서 내 성격을 인지했고 내 기질이 초민감해서 남들보다 감각을 몇 배로 느끼니까 바깥에 나가기만 해도 불쾌감과 스트레스를 몇 배를 느껴서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쉽게 예민해지는 성격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나에 대해 공감해주지 않고 상처가 되는 말로 나를 공격하고 공격적으로 내게 화내면서 나를 위협하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커다란 덩치로 나를 누르고 네가 나한테 상처 줬던 사례들을 많이 기억하지만 내가 진짜 5살 유년기에 내가 너보다 사랑받지 못해서 너를 많이 괴롭혔던 기억은 정말 0의 수준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고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했던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어떤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알고 있지만 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네가 너 얘기를 해줘서 나도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상담을 받고 전문가에게 불안 우울 강박 완벽주의 문제가 높고 다른 트라우마도 많다는 진단을 받았고 약을 먹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고 래 선천적으로 감정 조절과 텐션 조절이 평균보다 높낮이가 높고 조절이 어려운 성격이기도 해서 상담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성향이 너한테 크게 스트레스를 주는지 몰랐는데 이제부터라도 네가 더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내가 자제하겠고 미안하고 일정 부분 나를 이해해 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했어요 건강하게 살자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너에게 미안해하면서 살게


동생이 전부 읽을까 생각했는데 답장이 왔더라고요 "어"


저는 어이없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고 웃겼지만 그래도 다 읽어줘서 고마워서 "그래 고맙다"라고 문자 답장을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큰아빠, 큰엄마, 고모, 숙부, 아빠, 엄마한테 돈만 중요하니까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공격적인 말투로 간섭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해서 지금까지 그들을 영향을 받았고 매년 명절에는 말싸움을 했어요 그리고 그건 큰아빠의 딸 3명, 고모의 아들 2명, 아빠의 딸인 저와 남동생 2명에게까지 악영향을 주기적으로 미쳤고 할머니도 자기가 왜 이렇게 말을 하고 자신 또한 상처를 받는 존재인데 왜 이렇게 남들에게 화를 참기 힘들고 공격적인 말투를 쓰고 돈만 생각하게 되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문맹일 정도로 시대도 위험했고 평생 배운 게 돈이 중요하다는 가치밖에 몰랐으니까요


저는 소설을 평생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었고 작년에 제가 성인 ADHD라는 진단을 받고 그 책을 많이 읽으면서 ADHD는 뇌가 다른 선천적 기질이고 집중과 감정 조절이 남들보다 어려운 게 저는 고지능이고 조용한 여자라 더 발견이 늦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ADHD 증상이 아빠와 할머니한테도 나타난다는 게 예측이 됐어요 근데 또 그들을 평생 이렇게 살았고 ADHD에 대한 거부감도 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ADHD라는 걸 말하지도 못했어요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고 단점만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적 신뢰도나 이해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감정 소진이 되어서


저는 아빠와 엄마한테 2년 전 타지 자취방에서 내가 얼마나 돈에 대한 엄마아빠의 강박과 엄마아빠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었는지, 자주 엄마아빠동생과 나 혼자 싸우면서 내가 얼마나 가족으로부터 고립감을 느끼고 엄마아빠 말처럼 ”나만 없으면 집이 조용할 텐데 “라고 각인되며 내가 얼마나 자기혐오를 하게 되었는지 등등 생리 부정출혈이 오면서까지 만 자 넘게 장문으로 글을 써서 보내고 엄마아빠 할머니도 상담을 받으면 한다고 했어요


선생님께 들었는데 “내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아빠가 나한테 거의 평생 그랬듯이 네가 뭐가 힘들어 내가 얼마나 힘든데 하면서 내 감정을 비교하고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받아줬어야 했다 “고 들었고 그걸 평생 처음 알았고 이제라도 나를 이해해 달라고 ”내가 원하는 내 편이 되어달라고 “ 글을 썼는데 엄마아빠는 아마 다 읽고 아빠는 "미안해" 문자 보내고 엄마는 "내가 불행한 것만 기억한다"라고 "우리도 행복할 때가 많았으니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고 며칠 뒤에 타지 제 집에 찾아와서 그 장문을 단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돈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랑 일상 얘기만 하고 돌아갔어요


저는 자취방 2년 전 처음 자취방은 환경이 원룸이라 좁아서 매일 우울했는데 1년 전부터 집을 옮기고 이제 집이 넓고 좋아서 집이 얼마나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는데 18일에 만났을 때 지금도 엄마아빠의 집 환경은 고쳐지지 않았고 매우 열악한데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늘 그래요 엄마는 스트레스받으니까


"이번에 추석에 아빠가 친정에서 제일 가난한 자식인데 돈을 제일 많이 썼다 자기한테는 매일 돈 없다고 죽는소리하는데 친정한테만 돈을 쓴다 그리고 농사로 바쁘고 농산물을 집에 나둬야 한다고 계속 이 22년 동안 이런 집에 살았지만 나만 대학 졸업하면 아파트를 구해서 따로 나가서 살 거라는 얘기도 아빠한테 했다"고 근데 저는 그걸 듣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아 내가 그냥 대학 가지 말고 돈부터 벌었다면 엄마가 그 집에서 더 빨리 벗어났을 텐데 생각했어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는 아빠가 나를 왜 사랑하는지 몰랐어요 20살 때까지 아빠는 나한테 큰 트라우마와 가정폭력의 대상이었는데 진짜 나한테 계속 나를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내가 최고라고 얘기하고 그걸 못 믿었어요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관계가 넓어지고 책을 읽고 현재가 되어서는 아빠는 내게 트라우마를 안겼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맞고 아빠도 불안정한 사랑을 받았고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경상도 70년대에 태어나서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졌고, 아빠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제가 제가 받았던 고통에 대한 만자가 넘는 장문의 글을 읽고도 아직도 내가 뭐가 힘드냐고 자기 고통과 내 고통을 비교하는 마음이 있고, 나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18일에 제가 당일치기로 잠깐만 보고 아빠는 일을 가야 하니까 몇 분만 보니까 그런 말을 했어요 이제 가면 "나는 또 우리 딸을 기다리냐"라고 다정하고 서운한 말투로


아빠는 저를 너무 사랑해서 저한테 늘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했어요 저는 20살 전까지 그걸 거의 믿지 못했지만 20살 이후로 여행 가서 아빠가 저를 왜 좋아하는지 물었고 아빠는 어릴 때부터 기억나지 않은 내가 애교도 많았고 지금도 내가 너무 좋고 지금도 내가 자랑스러운 딸인 거래요 그리고 딸의 공부를 위해서 어떻게든지 열심히 돈을 벌 수 있대요 저는 아빠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저도 아빠를 사랑해요


근데 엄마를 더 사랑해요 엄마는 평생 일을 했고 현재는 직장에서 사람을 돕고 이야기를 공감해주는 일을 하고 그 직장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 받고 엄마는 정말 많은 일을 잘하고 재능이 넘치고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고 위안이 되어주었고 똑똑하고 평생 동안 엄마는 첫인상부터 칭찬 받는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말을 잘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많고 저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고 제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엄마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엄마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세상에서 가장 엄마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고 엄마라는 사람이 어릴 때 살았던 아주 열악한 환경을 알고 엄마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일정 부분 알고 엄마에게 몸을 기대고 있으면 안정감이 느껴지고 엄마가 행복하면 내가 죽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사랑합니다  


저는 현재도 부모님과 관련한 트라우마로 힘들어서 아빠엄마랑 가족 상담을 정기적으로 시작하고 싶은데 그때 2년 전에 장문의 글을 쓰고 부모님이 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후로 다시 말을 꺼내기 힘들어요


근데 18일에 동생한테 그런 얘기 듣고 문자를 보내고 19일에 학교 와서 수업을 듣는데 패닉 상태가 되는 거예요 내가 동생한테 평생 가정폭력을 언어적으로 가하는 존재일 수도 있었고 동생은 자식을 낳을 텐데 동생이 돈이라는 가치를 가장 중시해서 그 자식한테도 악영향이 끼치고 최근에 사촌이 아기를 가졌다는데 그런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생각하고 제가 지금 당장 할머니를 주기적으로 상담받게 하지 않으면


평생 아주 많은 사람이 힘들 수도 있겠고 그런데도 심리 상담을 몰라서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저는 수업 쉬는 시간에 할머니 집과 가까운 정신과 예약을 잡고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23일에 상담 같이 갈 거라고 제가 같이 가서 검사 도움 드릴 거라고 하고 날짜를 잡고 할머니한테 일단 먼저 상담하고 다른 가족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드리고 수업에 다시 들어가서 겨우 수업을 마쳤어요 그리고 저를 미워했어요 “아 나 왜 수업 집중 못했지 수업 잘 들어야만 하는데 공부 예전보다 잘하지 못하면 안 되는데” 그리고 몸과 정신이 아픈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2년 전에 가족한테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시기에 상담했던 학교 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시작했어요 나의 성향과 상황을 이야기를 1시간 넘게 얘기하고 여성 인권이 오른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죽을 수 있는데 제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여성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거니까 살고 싶다고 했고 페미니즘과 정신과, 심리 상담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사회에서 여자 이야기를 쓰는 목표가 며칠 전에 확고히 생겨서 한 공모전에 처음 제 수필과 시를 합쳐서 8개 정도 공모했고,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모든 사람은 교육과 개개인성의 가치를 알고 행복해지게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기 위해 너무 살고 싶은데 내가 많은 어른 가족과 싸워서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고 평생 외로웠고 지금 상태는 누군가에게 피해 끼쳤을까 봐 불안하고 여기 오는 것도 내가 재상담하는 게 다른 학생에게 피해 아닐까 불안했다고 하면서 상담을 얘기했고



선생님은 그렇지 않다고 상담센터는 지금 시간이 있고 학생을 기다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고 재상담도 가능한 거고 1년 넘게 시간이 많이 흐른 거고 제가 현재 불안도가 매우 높고 초민감한 인간이니 최대한 내가 수업을 들을 때 외부 오감의 자극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쉬는 시간에 빈 강의실에서 에너지를 보호하라고 얘기도 해주셨고 제 평생의 외로움도 이해해 주시고 제가 제 힘든 점이 있지만 그거에 끌려가지 말고 껴안고 끌고 가야 하고 그걸로 인해서 제가 글을 정말 잘 쓸 수 있고 예술가들처럼 예술로 해소를 할 수 있을 거고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보호했으면 하고 할머니가 정기 상담을 거부하시더라도 그건 할머니의 몫이라고 해주셔서 정말 구원을 느낄 정도로 감사했고 얘기를 많이 하고도 다시 재상담을 주기적으로 시작해서 약속을 잡으면서도 불안했지만 마음이 더 나아져서 집에 돌아갔어요  


집에 와서 아빠가 전화가 왔는데 할머니가 그 얘기했을까 봐 전화를 받지 않고 불안도가 심해져서 몇 시간 동안 일상에 집중을 못하다가 겨우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그냥 잘 들어갔는지 물어보고 끊어서 모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많이 하다가 약을 먹고 약간 두통이 있었지만 약은 약 2주부터 약효가 보통 돈다고 하는 걸 들고 잠 들어서 20일 새벽 1시에 깨고 9시에 다시 일어나서 여기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1시간 반 정도 걸렸네요 원래 수필은 자주 썼고 자기 주관이 확고하고 평생 1000시간 이상은 글을 쓴 편이고 과잉 생각인이라 이렇게 빠르게 쓰는 편입니다 그리고 기질이 초민감하니 예술의 재능이 있는 거죠


제대로 문학 창작 대한 주기적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고 문창과를 가면 좋았겠다고 오래 후회했으나 저는 지금 경제, 경영, 금융, 돈과 관계된 학과에서 목표가 없고 무기력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돈에 대해 알고 공부해서 돈을 열심히 벌어서 여자와 사회에 공헌해야지 생각을 하고 어쩌면 사회 운동가, 정치인, 재단,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 전 세계에서 내 책 수출하기 등등 그런 것도 삶의 목적이 생겼으니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나는 여자, 정신 건강(정신과, 심리 상담)과 복잡한 사회 차별 이야기, 좋은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어쩌면 내 생각보다 나는 위인이겠다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위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특히 한국 사람(어린이, 노인, 사회적 약자)은 더 정신과나 상담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시작하고 사회 차별에 관한 책(<선량한 차별주의자> 추천)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 주지 않는” 사람,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해서 자기 이해를 하면 합니다


저는 모두가 심리 상담을 정기적으로 받게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 것입니다


“사회의 평균”은 허상에 가깝고 “개개인성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어떤 “ ”교육”을 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저는 맹세합니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여자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저희 아빠도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 시대로 인해서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남자도 “슬픈 감정, 약하게 보이는 감정”을 더 “다정한 말투”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도 페미니즘은 필요합니다 정말 모두가 페미니즘에 대한 많고 긍정적인 이해를 시작하면 모두는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어제는 엄마에게 예민한 사람에 대한 정신 상담 책을 선물했고 오늘 20일 정신과를 갈 거고 다른 공모전을 준비할 거고, 내일은 약의 효과가 없어서 멀미를 심하게 하고 체력적인 소모가 심한 성향이어도 당연하게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시위(서울 혜화역 2번 출구: 오후 3시 - 세부 사항 ‘여성혐오폭력 공통 규탄 행동’ 트위터)에 갈 것입니다. 23일 월요일에는 고향에 가서 할머니와 정신과 상담을 갈 것이고 아까 지금 다른 상담센터에 예약도 잡아 놓았습니다


잘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도 잘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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