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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나 Sep 23. 2024

페미 일상

새벽 5시 11분이다. 내게 서울은 일이 있어야만 가고 대략 7시간의 이동과 멀미로 몸이 암전되고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혜화역 시위가 끝나고 소중한 친구를 잠시 만나 배웅하고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편지를 준다는 것을 그때는 잊은 채 공원 근처에서 고개를 드니까 서울대 간판이 눈앞에 보였다. 놀랐고 열패감이 들었다. 최상위권 대학들을 일상으로 접하는 삶에 대해. 시위에서 소리 때문에 에너지가 초전력모드가 되어서 내가 그곳의 짐이 된 기분으로 혼자 앉아서 멍하니 숙소를 그때 잡았다. 호텔이 안 가까웠으면 호텔을 가지 않았을 거다. 그 순간에는 그 큰 돈이 너무 허무하고 아쉬웠으나 지금은 하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호텔에 가서 7시 반에 일어나 조식을 내가 제일 많이 먹고 음식을 조금씩 다 먹어본 것 같아서 먹짱인 내가 아주 뿌듯했고 과하지 않게 적당히 먹은 것 같아서 기특했고, 지난번에 올렸던 글을 쓸 수 있었을 정도로 좋았고, 체크아웃하고 SNS로 만난 언니를 처음 만나러 가기로 했다. 나는 찾는 걸 잘해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찾다가 마침 가장 내가 좋아할 시공간을 찾았다. 서울 중구 북페스티벌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체험 부스는 대략 15개 정도 되었고, 가요와 클래식 같은 공연 무대도 같이 진행되어서 나는 12시부터 몇 시간 동안 체험 부스들을 하나 빼고 다 했다!


원래 나는 만들기를 잘 못한다. 만들기는 시간을 들여야 하고 손의 세심함이 필요한데 나는 급격하고 성급하고 과격한 성격이어서 내 못함을 참을 수 없어서 싫었다. 제일 못하고 과정이 지루했던 건 종이접기였다. 어린이집 때부터 종이접기가 싫었다. 빠르게 접다 보니까 예쁘지 않았고, 그리고 설명서를 봐도 이해가 잘되지 않고 시연을 해줘도 잘 잊어서 내가 종이접기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만 알았다. 그런데 거기 종이접기 부스가 있었고 나는 팽이를 처음으로 접었다! 선생님이 계속 시연을 해 주셨고 나는 잘 잊었지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까 나름 손에 익었고 나는 감격적이었다. 내가 종이접기를 성공했다니 내게 감명 깊고 멋진 일이었다. 옆에 사람이 계속 알려주고 영상처럼 시연을 보여 주면 나도 종이접기를 외울 수 있는 거였구나 종이접기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사라졌다.


체험을 다 해 보길 잘했다. 대부분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체험에 눈이 늘 반짝거리는 사람인데 집에 계속 있는다고 접근성이 매우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체험 키트들이 다채롭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린이들 사이에 앉아서 하나하나 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기회였고 다시 집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환경과 정리를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이었지만 예전부터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원래 살던 고향 집에 내 공간이 없고 집이 열악해서 예쁜 것도 집에 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자취방에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쌓이게 할 수 있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 그 과정이 새롭고 설렌다.


헤나도 했는데 예전부터 헤나를 계속하고 싶어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헤나가 생각보다 물품만 있으면 하기 쉬운 걸 몰라서 조만간 헤나 물품을 사서 집에서 헤나를 내가 하고 다니기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체험으로는 수첩 만들기가 있었는데 나는 수첩 만들기 할 때 따돌림당했던 시기에 그걸 만들어서 내게 수첩 만들기 체험은 좋은 기억이 아니었고 급하니까 늘 예쁘게 못 만들어서 그게 싫었는데 친절한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서 실을 끼워 책등을 만들고 수첩 표지를 내 취향대로 꾸며서 마음에 드는 수첩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반짝이는 자개 자석도 꾸몄고, 예쁘지는 않아 부끄러웠지만 걱정 인형도 만들었고, 도움이 많이 필요했고 정말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지만 양말목 네잎클로버도 만들었고, 종 모빌도 아주 쉬운 일이었지만 만들었고, 내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캘리그라피도 내 취향의 글씨체를 찾아서 내 갤러리에서 책 속 문장을 찾아서 캘리그라피를 하고 선생님께 캘리그라피에 쓰일 문장을 부탁드리고 그 문장이 쓰이는 섬세한 과정을 보는 시간이 마음에 들었고, 디폼 블럭이라는 것도 처음 조립해 보면서 내가 생각보다 점들도 차근차근 만드는 참을성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뿌듯했고, 사진 부스에서 셀프로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얼굴을 곧바로 한 번에 찍으면서 그렇게 하는 내 자신이 좋았다.


나는 3개 체험하면 달고나를 주는데 그걸 받지 않고 칭찬 도장처럼 팸플렛에 붙여주는 스티커를 열 개 넘게 모으고 다녔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모인 걸 오랜만에 보면서 현재의 어린이들이 개성이 강해서 멋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 어린이가 많았고 나는 어린이가 많이 있고 책이 있는 이 공간이 무척 좋았다. 부사를 남발하게 될 정도로. 부스에서 체험하면서 케이팝과 북 토크 강연과 말소리와 클래식 공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웃었다. 체험하다가도 나는 오감이 민감해서 소리가 잘 들리니까 MC와 가족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크게 웃게 되어서 저기서 하는 질문이 들리는데 웃겼다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명해야 했다.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물론 사람이 많아서 심신이 나도 모르게 지쳐갔지만 그 순간에는 그것도 모르고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라고 나는 계속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도 하고 다녔다.  


수공예란 아름다운 일이다. 성인이 되었으니 이런 정보를 안다면 집에서 키트를 사서 만들어 볼 수도 있고 더 많은 수공예 체험을 생각하니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반짝이는 미지가 숨겨져 있다는 게 기뻤다. 언니는 일이 있어서 늦게 왔고 나는 종이접기에 집중한다고 전화도 안 받고 있었는데 내가 사 오라고 해서 아이스티를 사 온 언니는 나를 발견했고 언니는 독서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체험 위주고 사람이 많은 시간대라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모루 인형 제외하고 다 했는데 그거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도 제일 많아서 이제 다른 곳에 가기로 했다.


언니와 상의해서 택시를 타고 문화 대여공간인 오리집을 예약해 방문했다. 인스타 계정으로만 보던 곳을 실제로 와서 조금 믿기지 않았다. 여기를 표현할 단어를 생각하다가 오밀조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단어에서 밀도도 생각나고 하나하나 애정으로 채워진 소품과 포스터들이 있는 곳이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언니와 떡볶이를 먹으면서 정말 많이 말했다. 페미니스트 여성과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으로 만날 기회가 적었어서 오랜만에 나는 예전에 온라인으로 페미니스트 계정을 만들 때 어떤 사이버불링을 당했고 지금은 그걸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이 적어서 그때는 속상했고, 온라인으로 아주 많은 여자들을 만나 깊은 감정과 유대를 경험했고 보통은 자연히 멀어졌지만 특정 문제로 멀어지기도 했는데 페미니스트 여자들과 특정 문제로 멀어졌던 기억이 다 큰 상실로 다가와 처음 만나는 페미 여성들과 만날 때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내가 선을 넘은 사람이 되어서 유기될까 두려움도 있었다고 고백했고, 그 마음이 무의식에 남아있었다는 걸 알고 이걸 거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몇 년 만에 정확하게 내 트라우마를 말하게 됐다는 걸 깨닫고 놀랐고, 얼마 뒤에 숨통이 확 트였다.


나는 내 글을 보여주었고 언니는 내 글을 읽고 내가 원하는 방식과 내 의도를 일정 부분 파악하고 내 글을 좋아해 주었고 나는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타 또한 내 완벽주의를 부술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오리집 공간이 우리 같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알아서 이 순간과 둘만의 대화가 포근하고 내밀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떡볶이만 보면 그때가 떠오를 듯했다. 나는 오리집에서 팔에 새긴 전염병 기호 헤나를 나오게 해 사진을 찍고 오리집한테 또 올 거라고 인사했다.


언니한테 내 대부분 물건이 검정으로 이뤄져 있고 헤나도 그렇고 이 모든 게 다 과한 XX라고 농담하고 내가 그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남과 다르고 숏컷이라 편견 받기도 쉬운 위치고 누군가 내 겉모습만 보고 나를 크게 상처 준 적이 많고 내 환경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없어서 예전에는 세상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나는 늘 많은 사람에게 친절한 말투를 쓸 수 있고 적대적인 사람에게도 잘 대응하는 편이 되었고 자기 긍정이 잘 되는 사람이라는 된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아직 칭찬이 어색하고 자기 의심과 완벽주의가 높지만 최고가 되지 않아도 나 자신은 나를 긍정할 수 있고 긍정적인 단어를 일상에서 늘 쓰고 있다는 게 언니한테 보인다는 게 좋았다. 나는 나를 긍정해서 강해지고 있다.


이야기하다가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저녁이 찾아왔고 나는 언니와 포비피엠에 가서 여자만 있는 곳에서 감정이 밀려오는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내가 더 좋은 말을 할 수 없을까 생각하면서도 언니에게 많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을 말했다. 사랑은 단순하게 좋음이라고. 내가 이유나 증명이 없더라도 언니 존재만으로도 언니를 사랑할 수 있는 건 과학적 원리처럼 당연한 일이고 인간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길게 했던 것 같다.


언니가 내 말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고 나는 언니가 얼마나 혼자서 삶을 버텼어야 했는지 상상도 못한 슬픔이 얼마나 무의식에 있었는지에 대해 마음이 내려 앉았다. 그 사실은 정말 내 인생과 닮아 있었기에 언니가 나처럼 느껴져서 목소리가 떨렸지만 우는 언니에게 나는 내가 어릴 때 울면 부모님이 윽박지르며 울지 말라고 해서 그 “감정이 옳지 못한데” 내가 이런 감정이 자주 드니까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그건 마음이 아픈 사람이 되는 거라는 걸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았고 울어도 된다고 얘기해 주고 언니를 계속 달래주고 우리 계속 많이 울고 많이 웃자고 말했다. 사랑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마음이 울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나중에는 후기를 듣고 내가 고른 버섯구이를 언니가 좋아해 줘서 뿌듯했고, 버섯구이가 타코야키처럼 안이 뜨거워서 재밌었고, 내게 포비피엠은 몇 년 동안 알았지만 가본 적이 없어서 가상 현실처럼 느껴졌는데 만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실감 나지 않았고, 내가 여기 노래 플레이리스트가 좋다고 말하고 언니가 그렇다고 웃으면서 같이 들려오는 노래를 들었다. 우리 같은 페미니스트 여자들이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언니도 그렇다고 말하면서 팝송에 맞춰 상체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해질 거고 좋아질 거고 상상하지 못한 세계를 감각할 거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고 언니가 내 눈빛에 대해 너무 맑다고 이야기해서 나는 언니가 좋아서 이런 거라고 답했다. 정말 그랬다.


예술적인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는 우리를 사랑한다.


당일에 즉흥적으로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연락이 와있어서 10시 정도에 도착할 거라고 연락드리고 밤새 우리는 대화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 헤어져야 했다. 언니가 몇 분의 시간을 확인하면서 같이 알맞게 떨어지는 30분이나 정각 같은 시간이 좋다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가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에 언니가 가는 길에 있는 네컷을 찍자고 해서 나는 재밌겠다고 했고 처음으로 MZ 네컷을 찍었다 처음 해 봐서 포즈도 안 정하고 다급하게 우당탕탕 들어와서 페미니스트 포즈도 취하고 어디가 나가는 곳인지 몰라서 헤매는 순간도 즐거웠고 연락해라고 언니에게 손을 흔드는 마지막까지 아쉬움마저 좋았다.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는 내가 잘 몰라서 연락도 한 번에 안 받고 늦게 들어왔는데도 (게스트 하우스가 처음이고 문을 열어주는 시스템인지 몰랐다) 무척 친절하셔서 감사했고 방은 깔끔했고 게스트 하우스가 처음이라 신기했고 나는 대략 5시간 동안 휴대폰을 하지 않고 약을 못 먹어서 (2박 3일 있게 될 줄 몰라서 약을 안 챙겨 옴) 그런지 계속 깨어 있다가 5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7시가 되는 지금까지 글을 썼다.


전부 표현하지는 못한 것 같다.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찰나가 있다. 이번이 그랬다. 더 많은 아름다운 찰나의 세계를 사랑하고 회복하며 나아가고 곤히 잠에 들 것이다.


몇 시간 뒤면 드디어 몸까지 불안하게 하던 시간이 온다. 두렵긴 하지만 나는 정말로 할머니를 데리고 상담 센터와 정신과에 상담하러 간다. 장거리를 가야 하지만 상관없다. 밤을 새울 수 있어서 글을 썼고 잠에 들지 않아서 기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기차에서 잠에 든다고 멀미를 덜할 수 있고 입실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늦게 예약해도 기차가 다행히 남아있었으니까. (할인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좋은 것들과 좋은 세상이 내 삶에 상상하지 못하게 많다. 나는 그저 그것을 발견하는 재능을 키우며 자연히 자라기만 하면 된다. 더 좋아진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나아지고 행복해진다. 모든 여자가 그렇기를 매일 신실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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