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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나 Sep 28. 2024

첫 가족상담하기 직전과 그 후

최근 글 <글로 한 사람을 이해하기까지> 읽고 오시면 이해에 도움 됩니다


서울에 오래 머물기로 한 것을 당일에 결정할 정도로 내 ADHD 특성은 즉흥적이었는데 충동적이기도 해서 나는 “당일”에 숙소를 잡고 기차를 예매했고 월요일이라 다 매진이었다. 택시에서 1분 남기고 기차를 놓쳤지만 기사님에게 화내지 않고 젊은 사람이 상담도 하고 너그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패닉이 온 상태에서 이성을 붙잡고 갈 시간이 안 되기 때문에 정신과 예약은 취소했다. 성남터미널이 가까워서 가달라고 했는데 2분 남기고 버스를 놓쳤다. 패닉이 왔지만 상담센터 예약을 저녁 7시 반으로 겨우 변경하고 진전하고 밥을 챙겨 먹고 주인 분께 맛있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뒤로 남은 시간에 한낮에 터미널을 돌아다니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덩치 큰 아빠한테 폭력 당하기와 엄마에게 언어폭력 당하기를 고른다면 전자를 고를 거라 생각했고 자해를 하고 싶어지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했다. 신체를 해하면 정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자해 개념으로 고강도 운동을 하면 될 것 같다.


노트북이 무거워서 짐을 가볍게 하자고 다짐하면서 진주에 도착해 카페에 있다가 할머니댁을 찾아가려고 했다. 할머니가 전화 와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긴장되어서 밥도 못 먹겠고 내 말이 너무 빨라서 이해도 안 되고 고향 오지 말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패닉이 와서 친구가 도착하고 힘드니까 패닉 와서 소리를 한 번 지르고 미안하다고 했고 친구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위로받았다. 다시 할머니댁에 찾아갔는데 나는 계속 할머니에게 전화하면서 센터 가서 제 옆에서 제 얘기만 들어달라고 옆에 있어주시면 안 돼요? 손 내밀어 주시면 안 돼요?를 잠긴 밤의 대문 앞에서 소리쳤고 예전에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울던 내 전화를 끊어버리던 가족의 거부 트라우마가 생각났다.


절실하고 불안했으므로 마음이 매우 고통스럽고 잠도 밤을 새운 상태에서 감정 조절이 전혀 불가한 상태로 상담센터에 혼자 가서 1시간 동안 빠르게 내 모든 정체성과 가족 상황을 펑펑 울면서 쏟아냈고 그 모든 내 정체성과 상황은 이해받았다. 하나도 거부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정체성의)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것에 처음으로 온전한 편안함을 느꼈다. 나중에는 내 정체성을 다 상담하는 선생님께 밝히고 수용받았다. 처음으로 나를 다 밝혔기에 마음이 창대하게 나아졌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아빠가 내가 할머니와 상담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전화가 와서 20분 동안 펑펑 울면서 내 힘듦을 이해해 달라고 했고 가족 상담을 아빠는 수락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준다”라고 했고 나는 아빠를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잘 가르치는 교수님 전공 수업이 거의 처음으로 재밌었고, 학교에서 유일하게 친한 언니에게 내 모든 정체성을 얘기했고 사랑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같이 축하했고 그와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기도했다.


그리고 멀미가 심하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정신과 가서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고 약을 받고 사상에 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에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전화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음식을 먹고 문구점에서 어렸을 때 엄마가 안 사줬던 아이클레이를 사서 만지고 사진 찍고, 3층에 영화관에 올라가서 일반 팝콘을 사서 냄새가 좋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다 먹고, 어린이용 용기에 담긴 포도주스를 사서 먹으면서 이거 안 쏟고 편한데 성인도 다들 먹는 게 유행이 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며 고향 가는 버스에 있었다.


그리고 몽글몽글한 앨범을 듣고 고향집에 피곤한 상태로 왔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연락을 잘하지 않았지만 보고 싶었던 애에게 메일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2시가 되어서 자고 5시에 깼다가 9시에 일어났다. 역시 이 장소는 내게 불편했다. 고향집은 내게 무력감을 잘 준다. 하지만 나는 양친에게 낭독이라도 해주기 위해 권리와 차별에 관한 책을 고향집에 7권 주문했다.


몇 분 전 남동생에게 내가 ADHD라는 사실을 고백했고 같이 상담센터에 가서 내 이야기를 듣기로 그를 설득했고, 나와 대화한 엄마는 주기적인 상담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글을 쓰는 직업을 원하는 내가 잘할 거라고 말했고, 이제 자주 고향에 오라고 했고, 나는 상담을 위해 이제 매주 고향을 갈 거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거부한 것마저 가족 상담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 상담으로 가족과 더 많은 좋은 대화를 하고 싶다. 주기적으로 가족 상담을 위해 고향에 오고 싶다.


1시간 뒤면 첫 가족 상담을 시작한다. 어쩌면 내 평생 기다린 일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하려고 한다.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계속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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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담은 온건하고 좋았다. 나는 남동생의 조언을 듣고 ADHD를 밝히지 않기로 했고 그냥 성격이 예민했고 입시 같은 문제로 사춘기 같은 게 왔고 그때는 예민해서 화를 쉽게 내는 성격으로 따돌림 당했다는 이야기만 했고 엄마는 평생 몰랐는데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아빠도 유순하게 경청해 주었고 남동생은 나와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걸 보고 공감 제스처가 말하는 순서에 가장 먼저 와야 한다는 걸 그 찰나에 학습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자기 가치관과 작은 습관이 커다란 일을 꼼꼼히 하는 능력 좋은 인간이 된다는 것을 명료하게 얘기했다. 가족상담은 선생님이 부모님이 마음의 준비가 되면 연락해서 나중에 시작하자고 하셨다. 나는 말하지 못한 정체성이 많아서 다시 기회가 못 올까 답답했지만 그걸 잘 숨기고 보이지 않는 괴리에 대해 마음이 아팠지만 겉으로는 그날 가족과 잘 놀았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까 그 말이 맞다. 1번 한 가족 상담도 큰 변화를 내가 이룬 것이고 남동생을 더 신뢰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차근차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드럽고 천천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변화가 안 된다면 내가 거리를 두면 된다. 내가 최우선이니까. 내가 지금 생각이 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지 계속 되짚으면 된다.


그리고 가족이나 부모님께 모든 걸 말하지 않고도 부모님과 잘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자립할 때를 기다려서 부모님과 정체성에 대한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가족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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