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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나 Sep 21. 2024

내 탈코르셋

2023년 기록

어릴 때부터 여성 차별을 인지하고 거부감 없이 여성 차별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였다. 몇 년 전에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인상이 기억에 다 지워지지 않았을 정도로. 여성 혐오와 차별에 관한 정보를 빠르게 흡수했다.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단 하나는 탈코르셋이었다. 나는 자기관리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자기 만족감이 있었고, 그것이 코르셋을 조인다는 문장으로 치환되는 게 낯설었다. 못생기고, 뚱뚱한 내 외모를 더 낫게 해줄 수 있는 화장과 두꺼운 다리를 가려주는 치마가 좋았고, 시간도 그렇게 쓰지 않고 가볍게 꾸미기를 적당히 하는 건 괜찮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깼던 건 탈코일기였다.


나는 탈코일기를 다 보고 탈코르셋이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코가 옳은데 숏컷은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려웠고 걱정도 많이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헌신적으로 좋아했던 남자 아이돌 그룹의 논란 아카이빙을 보고 무언가 깨지는 기분을 받고 케이팝을 관두기로 했고, 그 날에 단발에서 숏컷으로 머리카락을 잘랐다. 생각보다 막상 자르고 나니 걱정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 머리를 보고 별 거 아니였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해방된 기분도 들었고, 뒷 머리카락이 피부에 거슬리지 않았고, 뒷 머리가 시원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장모종이 아니였음에도 탈코라는 걸 알기 전까지 내가 숏컷으로 사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디폴트가 아닌 상태로 사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는 상태로 온 지도 몇 년이 되었다.


다시 화장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건 또래 집단과 공통점으로 묶여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었을 때가 있었으나 내가 디폴트 상태여도 나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숏컷이라는 것만으로도 페미니스트나 레즈비언으로 지칭 당해 낙인 찍히고 소문이 돌까 어떤 환경에 변화가 있을 때 수많은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환경에 놓이니 적어도 대놓고 그런 것을 드러내는 게 무례하고 예의 없다는 분위기가 주류여서 그런지 아무도 내게 너 페미야? 물어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운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를 숏컷이라 페미로 생각해 대놓고 적대적으로 말하는 남자도 없었고, 숏컷을 봤을 때 얘 페미인가? 생각하는 건 그 자체로 잘못된 관념이고 숏컷에 대해 스타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상식적이며, 대학생이 되니 솔플도 쉽고, 친한 사람들 위주로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더 좋아져서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0으로 수렴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말을 잘한다는 얘기를 소중하게 들으면서 유연성과 사회성도 높고 나처럼 표현을 잘 하고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흔치 않다는 걸 깨달아서 요즘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직장 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탓이 아니어도 내 탓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기는 하다. 더 단단해지고 싶다고 한결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허상인 가정에 불과하고 나는 맞닥뜨리고, 행동하면 생각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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