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니?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부터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고, "ㅇㅇ 이네 둘째가 참 야무져"라는 이야기를 귀에 닳도록 들으며 살아왔다. 좋고 싫은 것이 명확했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정의하는 나 자신에 대해 상당히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다(라고 생각했다). 20대 중반, 캐나다로 공부를 하러 오면서 영주권까지 신청해 놓은 지금 이 순간까지 내 인생은 제2의 사춘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감정적으로는 훨씬 더 세련되고 안정되었지만, 인생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것은 청소년기 사춘기 때보다 더욱더 강력하다.
인생에 다양한 일들이 생겨나고, 남들은 어쩌면 평생 생각도 안 해볼 만한 것들 - 예를 들면 '어느 나라에서 살아갈 것인지'와 같은 것 - 을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작년에 기를 쓰고 받아냈던 풀타임(정규직), 그로부터 한 달 반 뒤 정리해고, 그러고 나서 미국 회사에서 다양한 인플루언서들과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인플루언서들이 쌓아서 만들어낸 지금의 결과가 너무 부러웠다. 얼마 전에는 희렌최님이 쓰신 '호감의 시작'이라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인플루언서들과 일하면서 내가 느꼈던 모호한 감정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자주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고 성장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누군가의 성취가 부러웠고, 나도 성취하려면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급하고 불안했다."
라는 문장을 읽고 인플루언서를 향한 나의 '시샘' '질투'에 대한 감정의 원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나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고 욕심이 많다. 또한 성장 욕구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루어둔 '성취'와 '성과'가 부러웠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나도 그들과 같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조급해졌고 늘 그런 마음이 드는 내가 불편했다. 하지만 '불안'과 '질투'를 파헤치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주하는 게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불안과 질투라는 감정에 한껏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그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는 게 생각보다 속이 시원하고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와 내가 이런 마음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이런 생각을 더 깊게 파고들게 된 이유가 되었다.
늘 나에게는 알지 못하는 응어리 같은 생각들이 있다.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어떤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할지]와 같은 원초적인 생각들부터,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어떤 일이 나에게 만족감을 줄지,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어떤 매력들을 내세울지]와 같은 현실적인 생각들까지. 나는 늘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자기 매력이 어떤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깊게 생각해 보면 대답을 잘할 수가 없다. 나도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여러 책들을 읽으며 느낀 점은
"아, 나는 나에 대해 정말 모르는구나. 만 28년을 나로 살아왔는데, 내가 진짜로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자세하고 깊게 알아볼 생각이다. 단순히 '나는 당근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는 얇게 썰린, 익히지 않은 당근을 샐러드에 넣어 아삭하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와 같이 조금 더 깊게 나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해서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조금 더 센스 있고 기품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잘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들을 동경해 왔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될 거다.
부끄럽겠지만 내가 보고 있는 나의 이미지상과 남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까지 모두 다 알아볼 생각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느낄지 평소에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나이지만, 막상 돌아보니 내가 나를 알아주는 시간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뉘우치게 된다. 처음에는 나는 왜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내적인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인지 나름의 원망(?)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기회가 이제라도 와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누구는 평생 자기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살지만, 나는 30대나 40대에 비하면 비교적 이른 20대 후반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니까! 오늘이 내가 살고 있는 가장 젊은 날이니, 이런 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에 다시금 감사해 본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