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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어도 수영장에 갑니다> 수영을 시작한 이유

운동시작합니다, 몸무게 공포증, 물이 부족한 사주, 수줍은 수영이야기

by 산책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수영장을 가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단상에 올라 소감을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 단상은 체중계인데, 아직 거기에 오를 만큼의 용감함은 생기지 않아
그 감격스러운 멘트는 추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운동을 했다는 건,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니까, 이건 분명히 기념할 만한 일이다.


나는 지독하게도 운동을 싫어했던 사람이다.

기초대사량이 좋았던 덕에, 33살까지는 식이조절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균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탄탄탄, 탄지탄지’ 식단으로 유지된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계속될 거라는 내 망상을 34살이 된 내 몸이 정확하게 비웃었다.

그해,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단순히 끼니때 많이 먹어서 일시적으로 몸이 무거운 게 아니었다.

살 덩어리 자체가 내 몸에 붙어 있는 기분, 그래서 하루 종일 쳐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천장을 보며 침대에 툭 쓰러지는 건 이제 일상이었고, 매트리스에 배를 깔고 누우면 그게 그렇게 편했다.

그러다 혈당 스파이크라도 온 듯, 늘어진 낮잠에 빠져들었지만 달콤한 낮잠의 끝은 어김없이 더부룩한 배로 끝맺음 됐고 그 불편함을, 나는 언제나 소화제 몇 알로 해결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체중계에 오르는 게 망설여졌다.

자비 없이 올라가는 숫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체중계 위에 겨우 한 발만 올렸을 뿐인데 숫자는 무섭게 치솟았다.

주식이 이렇게만 올랐어도 떼부자가 됐을 텐데, 현실은 두 발로도 당당히 서지 못한 채
슬그머니 체중계에서 내려왔다.


체중을 나타내는 숫자가 '나'였고, '나'는 곧 그 숫자였다.

하지만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으면 괜찮았다.
그 숫자를 보지 않으면, 회피라고 해도 마음은 편안했다.

하얀 샤XX 체중계 위로는 뽀얗게 먼지가 쌓여갔고,
체중계는 점점 집구석,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엔, 몸무게 말고도 나의 살찜을 알려주는 숫자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옷 사이즈였다. 새 옷이 사고 싶어지는 환절기, 기분 전환 삼아 쇼핑을 갔다가 심하게 뒤통수를 맞았다.

피팅룸에 들어가는 게 귀찮아 늘 하던 대로 같은 사이즈를 골랐는데, 이번엔 달랐다.


브랜드마다 옷 사이즈가 미묘하게 다르니, 핏이 살려면 귀찮더라도 입어봐야 한다는 건 남편의 오랜 지론이었다. 그 지론을 따랐다가, 알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내가 항상 입던 그 사이즈의 옷은 허리가 답답했고, 어떤 옷은 허벅지부터 난감했다.

그리고, 한 번도 없었던 일을 겪었다.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슬펐다.

하지만 나는 새 옷이 너무 갖고 싶었기에,
“나중에 살 빼고 입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 치수 큰 옷들을 샀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한 치수 큰 바지를 샀는데,
배가 불룩 튀어나온 느낌이 들면 이건 이상 신호다.

여기서 한 치수 더 큰 옷으로는 환승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의식적으로
거울 앞에서 배를 만져보고,
옆구리를 손으로 한 움큼 잡아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찌면, 진짜로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 밤낮으로 운동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마음과 신체는 늘 따로 놀았다.

너무 피곤해서,
너무 더워서,
너무 짜증이 나서,
너무 졸려서—
나는 운동을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인생도 잘 안 풀리고,
살만 찌는 내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사주를 봤다.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 본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사주의 음양오행 구성을 보고
진지하게 ‘수영’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런 걸 사주의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 사주에는 水가 부족했다.

“물이 부족해서 내 삶이 이렇게 건조했구나…”
하는 탄식과 함께,
수를 보완하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렇게, 나의 ‘수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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