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허리, 장갑, 택시
[아빠사자를 기억하세요. 꼭 아빠사자를 만나서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세요! 엄마사자는 안됩니다. 오빠사자도 안 돼요!]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는 이미 끊겼고 지하철을 타자니 막차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종종걸음으로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걱정하는 사이에
갑자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H'님의 팬버스가 켜졌습니다.
방금 콘서트를 마치고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H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힘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팬버스를 켜고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장갑을 꼈지만 터치가 잘 되지 않아 오른손 장갑을 벗어 잠바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아빠사자 타고 안전하게 귀가하세요 ]
허리춤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빠사자를 찾으면 되니까.
"정식으로 등록된 택시는 번호판이 '아, 바, 사, 자'로 시작합니다.
쉽게 아빠사자로 기억하세요! 오늘 한정판 콘서트 고양이 봉 아래에 등록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그 등록번호만 아빠사자 택시기사님께 알려드리면 됩니다. 그럼 돈걱정 없이 결제하지 않고 집가지 가실 수 있어요. 춥지 않게 택시 타고 이동하세요."
H는 저녁 늦게 돌아가는 팬들이 걱정된다고 ' 팬 배웅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했다. 콘서트장으로부터 반경 5km 이내의 택시는 H가 고용한 택시들이었다.
그런 H였다. 부모님은 그깟 아이돌이 밥 먹여주냐고 날 타박하기도 했지만
나의 덕질은 낭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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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H가 추락했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내가 그를 지킬 호구를 둘 겨를도 없이
그는 매혹적인 고양이에서 도둑고양이가 되어 사라졌다.
H의 소속사는 입장을 내지 않았고 '확인 중'이라는 기사문만 올라왔다.
쏟아지듯 업데이트되는 소식에 나의 최애는 이 세상 최고의 호구가 되고 있었다.
나는 내 최애가 불시착한 이 지저분한 판에 호구를 두어야 한다.
바둑에서 자신의 돌을 지키기 위해 놓는 중요한 수
‘호구'는 나와 같은 팬들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