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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Mar 13. 2023

나의 해방일지

난생처음 혼자 남게 되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혼자만의 삶. 나도 그러했다. 대학시절 부모님을 떠나 작더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생활해 보고 싶은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은 물론이고 결혼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진정한 의미의 혼자만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많으면 시어머니, 시누이 등을 포함하여 7명의 대식구가 함께 거주하기도 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십여 년 전 지방근무 당시 30여 평이되는 관사에서 혼자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주중에는 아침마다 전화로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막내를 깨워야 했고 금요일 밤이면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와 주중에 묵었던 먼지들을 털어내는 대청소를 해야 했다. 한시도 마음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온전히 독립할 수 없었던 삶이었다.


이 주전 막내를 독립시켰다. 지난해 말쯤 저녁식사 가운데 금년 봄 대학 4학년으로 진학하는 막내가 말했다. “앞으로 생활비는 제가 책임질 테니 학교 근처로 독립하고 싶어요”


학교 오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몸도 피곤하여 학교 근처에 살면서 자기 삶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 그렇게 서운함이 밀렸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과거 왕복 서너  시간을 버스에 시달리면서도..... 꼰대들의 “왕년에는 내가 말이야~~”가 입에서 터져 나오려 했지만 꾹 참고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막내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었다. 게다가 실제 실행여부는 알 수 없지만 생활비를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하니 일면 기특한 마음까지도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증금 등 여러 가지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간의 숙고 끝에 나의 작업실 - 그림을 시작할 때 꿈꾸었고 퇴직 후에 비로소 현실화했던 나의 공간 (미사랑) -을 집으로 옮기고 그 보증금을 이용, 막내를 독립시키면 되겠다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이주 전 주말 막내가 이사를 나간 것이다. 1인용 전자레인지, 청소기, 예쁜 식기며 머그잔 등 미사랑에 있던 작은 살림살이들을 고스란히 짐도 풀지 않은 채 막내에게 넘겼다.


막내가 쓰던 방을 나의 미술 작업실로 꾸몄다. 미사랑에 있던 화분들을 거실로 옮겨 종일 햇살을 듬뿍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기타 레슨을 받던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 집에서 레슨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내심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막상 혼자 남겨졌을 때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어떻게 하지? 지난해 딸 결혼식 후, 막내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큰 상실감과 허전함을 느꼈었던가! 물론 내게는 아기 냥이들, 제리와 보리가 있지만 그들 만으로 나의 고독감을 달랠 수 있을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지난 이 주간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막상 깔끔하게 정리된 새로운 작업실을 접하니 예상외로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차량이동도 필요 없고 식사도 집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종일 미사랑에서 작업하는 나를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던 냥이들, 제리와 보리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방해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릴 때면 옆에서 지켜보던가 아니면 잠을 잤다.


 < 따뜻한 창가에 앉아 꿈꾸는 냥이, 보리 >


외로움과 고독감? 하루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지루하거나 외로울 틈이 없었다. 5월에 있을 단체 정기전시회에 대비하여 작품을 완성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모든 가정의 의무에서 해방된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을 이룬데 대한 야릇한 흥분이 나를 들뜨게 하는 것 같았다.


청소를 해 놓은 상태를 어질러 놓을 일도 없었다. 집안은 늘 신혼 때보다 더 깔끔하다. 요일별로 나름 스캐쥴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며칠이고 집안에서 작업하니 능률도 더 오르는 것 같았다.


나의 이 해방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정말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인 관계로) 미사랑을 떠나며 떼어 놓은 현판을 현관문 앞에 붙여 놓지는 못했지만 나의 미사랑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리라.


오늘도 나는 나와 제리, 보리의 아침 식사를 챙긴 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아 가슴 깊이 이 해방감을 만끽한다. 냥이들이 다시 깊은 아침잠에 빠져든 이 고요한 시간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며 나의 해방일지를 마무리한다.


< 거실 창가에서 봄볕을 만끽하는 화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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