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전화가 왔다. [아부지♡] 핸드폰에 뜬 세 글자를 보고 든 생각은 '엄마인가?'였다. 엄마 핸드폰이 꺼져서 아빠 폰으로 전화를 했거나 혹은 둘이 같이 있는데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엄마가 전화를 걸었거나. 그런 가정 밖에 할 수 없었던 건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의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 한 잔 먹고 올라가다가 전화했다~ 뭐하노? 밥은 묵었나?"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는 아빠가 낯설지만 반가웠다.
"그냥 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하는 아빠, 울컥한 마음을 누르고 전화를 이어갔다.
아빠는 본론을 이어갔다. 일주일 전 이사를 마친 우리 부부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둘이 고생해서 좋은 집 가게 된 게 기분이 좋다고, 친구분들에게 자랑도 많이 했다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아빠가 이제야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진즉에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표현을 잘 못하지 않냐고.
그리곤 "기분은 좋은데 아빠가 못해준 게 너무 미안해가지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 이게 진짜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었구나 싶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구나! 뜨거운 게 목 끝을 탁 치고 넘어왔다. 어쩔 수 없이 현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아빠는 사위에게도 비슷한 말을 이어갔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전화를 받아 들어 아빠에게 전화 줘서 고맙다고, 종종 집 가는 길에 이렇게 전화 달라며 "나도 자주 전화할게요 사랑해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빠가 전화 온 이례적인 날. 아빠의 '미안하다'는 마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마음 같아선 딸내미 이사 가는데 돈도 보태고 살림살이도 척척해주고 싶겠지만 우리 집 형편이야 뻔한 일이다. 이불이랑 그릇 엄마랑 같이 예쁜 거 사줬으면서, 냄비도 사주고 프라이팬도 사줬으면서!! 나는 충분히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마음이 쓰렸나 보다. 나 역시 작년에 가족들이 이사 갈 때 푼돈 조금 보태고 더 돕지 못해 마음이 쓰렸던 걸 생각해 보면 아빠 맘이 십분 이해됐다.
그래도 아빠가 미안해하는 게 속상하다.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는 게 돈 얼마 보태는 것보다 내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