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박이, 미역귀, 김치국밥과 아버지
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3
일곱 번째,
차돌박이의 고소함을 알게 된 건 삼각지 노포 식당에서였다. 할머니표 묵은지와 솥뚜껑에 구은 것 같은 차돌박이와 걸쭉한 된장찌개의 합이 최고였다. 물론 값은 비싸고 식당은 깨끗하지는 않았고 친절하지도 않았으며 사람은 무지 많았다.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큼 맛이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돼지갈비의 달달함을 맛본 건 취직 후 첫 회식 자리에서였다. 우리 엄마는 왜 이 맛있는 것을 한번도 안해줬던건가 살짝 서운해질 정도로 맛났던 단짠단짠 돼지갈비. 육회나 생고기는 아직은 마냥 가까워지지는 않은 적당한 선을 지키고 있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는 맛있다. 내가 비건이 될수는 없는 이유. 그러나 많이는 먹지 않는다.
여덟 번째,
미역귀를 아시나요?
아마도 미역으로 팔기에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울퉁불퉁한 귀처럼 생긴 부분일듯 해요. 이 부분을 잘 말려서 고추장에 찍어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으면 바다냄새가 나요. 술안주로 자주 드셨죠. 부산 태생의 친정아버지는... 딱히 술안주를 준비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였을 수도 있고 그렇게도 좋아하는 부산을 느끼고 싶어서 였을 수도 있었겠지요. 딱딱한 미역귀를 그리 드셨는데도 91세 가실 때까지 이는 말짱하셨으니 그것 참 다행이죠.
이제 전 미역귀를 먹지 못합니다. 얼마 전부터 왼쪽 아구뼈쪽 통증과 긴장감이 조금씩 있어서요. 딱딱한 것들을 먹거나 입을 크게 벌려서 먹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설 명절 마다 친구 분들을 모아서 음식을 나누고 미역귀를 뜯으면서 수다와 여가를 즐기셨던 풍류대마왕님이 그립기만 합니다.
아홉 번째,
명절을 보내고 기름진 음식에 속이 느글느글해지면 아버지는 항상 김치국밥을 드셨다. 신 김치를 물에 헹구어 조그많게 썰고 큰 멸치와 찬밥을 넣고 오래 오래 죽처럼 흐물거릴 때 까지 끓여주는 거다. 핵심은 한번 끓어오르면 김치 국물을 한 국자 부어 주는 거. 이 쉬운 것도 항상 명절이라 지친 엄마에게 시킨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문제. 아버지가 음식을 해준 기억은 어느 여름 해수욕장에서의 꽁치캔으로 끟여주신 김치찌개 뿐.(이제는 그 기억마저 희미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김치국밥을 찾을 때쯤이면 엄마는 늘상 뾰루퉁하셨었다. 이제는 백번 이해하는 엄마의 뾰루퉁. 지금 아버지와 같은 삶을 누리는 사람은 아마 없을듯 하다. 좋은 시대를 잘 살고 가셨다. 오늘 저녁은 나도 김치국밥이 필요할 듯 하다. 멀미나 입덧할 때의 배처럼 꾸리꾸리하다. 내가 엄마의 김치 욕심을 물려받았다는 걸 느끼게 되는 요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