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도 정량이 있다; 인간관계의 시작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세상에 태어나 제일 처음 맺는 인간관계가 엄마와의 관계이다. 아기가 하나의 인격체로 형성되기도 전에 벌써 만남을 통한 인간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관계를 형성하여 가족구성원이 되거나 단체에 속하게 되고, 자동으로 사회의 일원이 된다.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우리는 인간관계의 사슬에 묶여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자동적으로 민족과 나라에 속하는 개인으로써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나의 인생도 예외는 아니다. 태어나니 첫째 아이로 엄마의 돌봄을 받았고 아빠의 이쁨을 받았다. 그러다 동생이 하나 둘 생기고 장녀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동생들과의 사이에서 서열이 정해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년과 성적에 의해 분류되고 사회에 진학해서는 직업군으로 나뉘며 현재까지 굳건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을 다루는 직업으로 인하여 정말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돌보고, 만나고 헤어지고 스쳐 지나가고는 했다. 그런 많은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도 있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관계형성이 다른 이들과 다른 사람도 있고, 관계의 깊이가 다른 사람도 있고, 내 기억에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만남에도 정량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스개 소리는 아닐 것이다. 젊은 날, 간호대학시절 우린 실습이라는 것을 한다. 실습 중 선배간호사가 "초짜일 때 환타(환자를 타는 사람, 즉 환자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의료인들의 통속어)면 말년에 느슨하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주니어 때 많은 환자를 돌보면 시니어가 되면 돌보는 환자도 적어지고 나름 노하우가 생겨 느슨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니어라 불리던 그 시절의 나는, 바로 그 '환타'였다. 출근하면 꼭 입원을 한건 이상씩 받고, 입원이 없으면 타 병동이나 중환자실에서 전실을 온다. 심지어 타 병동 환자가 수술하고 다인실 원하여 전실 오는 경우도 있었다. 기억 남는 환타의 절정은 응급실 실습 때였다.
초번 근무로 출근하여 주변 정리를 하던 중 어느덧 오후 6시가 넘어가면서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고참 선생님이 갑자기 기분이 싸~~아하다는 표현을 하며 침대를 쓰윽 보더니 이동카와 휠체어등을 챙기고 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면서 "오늘 학생이 환타야, 내가 환타야?"라며 살짝 웃으며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응급실 앞으로 흰색 봉고 1톤 트럭이 멈추더니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이 트럭뒤의 칸(?)을 내리고 피 흘리는 사람들을 부축하여 내렸다. 두 블록 근처의 사거리에서 다중 충돌사고가 있었고 사거리 근처 병원의 수용인원 초과로 사고현장에서 가까운 그 병원으로 이송을 온 것이다. 그 후로도 트럭이 1대 더 왔고, 구급차와 택시가 몇 대 더 도착하여 다친 사람들을 내려놓고 갔다. 나의 첫 응급실 실습 3일 정도 되던 날이었으며, 그렇게 많은 인원이 응급실로 들이닥치는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 고참선배는 간호사스테이션에 서서 응급실 간호사들과 실습학생들에게 환자를 어느 침대에 눕힐 것이지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을 불러 접수를 시키고 의사들을 불러 모아 처방을 받았다. 인원이 너무 많아지자 간호과에 협조를 요청하여 타 부서 수간호사들과 간호과장님도 내려와 환자들을 분류하였다. 심지어 퇴근해서 집에 있던 의사 선생님들도 그 고참선배의 호출에 불려 나왔다. 그때 원피스의 뒷목에 상표가 튀어나와 있었던 소아과 의사가 기억난다. 집에서 급하게 오느라 옷매무새도 다듬지 못하고 허급지급 도착하여 수련의에게 환자 상태 설명을 듣던 그 소아과 전문의사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렇게 모든 의료진을 불러 모으는 그때의 그 고참선배는 멋있어 보였다. 많은 의료진들이 그 간호사 한 명의 지시에 따라 유리를 털어내고, 상처를 치료하고 꿔매고, CT를 찍고, 판독을 하고, 수술해야 할 환자들을 분류하는 걸 보면서 '간호사는 저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롤모델로 정해버렸다.
그 많은 환자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트럭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이었다. 다친 사람들의 운반과 이송을 다 도우며, 자신의 아내와 1살 정도의 아기를 먼저 치료한 후 거의 마지막에 CT를 찍었는데 뇌출혈이 진행되어 응급수술을 들어가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의식이 멀쩡한 상태여서 CT를 보여주며 설명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내는 쇄골골절, 아기는 놀란 정도라 치료가 원만했는데 정작 본인이 제일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수술을 왜 해야 하는지 믿을 수 없어하던 그에게 의사는 열심히 상태설명과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까지 설명을 하고 겨우 수술에 동의하였다. 나에게 수술실로 이송하는 일이 주어져 그를 옮기면서 "수술 잘하시는 의사 선생님이니 잘 될 겁니다."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그날 이후 난 <환타>라는 별명이 붙었고, 내가 나타나면 간호사들이 경계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내가 속한 실습조는 나 덕분(?)에 다른 실습조보다 많은 케이스를 보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렇게 나의 사회에서의 파란만장한 인간관계가 시작되었다.
인간관계는 항상 어렵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고,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들린다. 하지만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이런 인간관계에서 우린 마음의 상처도 받고, 위로도 받고, 성격의 변화도 겪는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성격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5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에서 꺼내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내가 만났던, 아니면 내가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기대해 보자. 어떤 인간들의 이야기가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