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대의 전멸

by 소수의견

밤이 깊어졌다. 로마 병사들이 불타버린 마을 근처 언덕에 야영지를 차렸다. 텐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큰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이 둥글게 앉아 포스카(신포도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달래고 있었다.


세르기우스가 전리품 자루를 열어젖혔다. 청동 팔찌, 은으로 만든 목걸이, 그리고 몇 개의 동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 오늘의 수확을 나누자고." 세르기우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비록 야만인들의 것이지만, 청동 세공은 제법 볼 만하군."


가이우스가 큰 손으로 팔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런 걸 보면 이놈들도 나름 손재주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로마 앞에서는 한낱 장난감이죠."


병사들이 웃으며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 누군가가 부카툼(건빵)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딱딱한 소리가 밤공기에 울렸다.


"자네들, 드루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나? 진짜 무서운 놈들이야."


병사 하나가 관심을 보였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백인대장님?"


세르기우스가 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갈리아에서 복무할 때 들은 이야기인데, 이놈들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고 하더군. 특히 젊은 처녀나 아이들을 좋아한단다."


병사들이 술을 들이키며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바치는데요?"


"거대한 나무 인형을 만들어서 그 안에 산 사람을 집어넣고 태워 죽인다더군. 비명소리가 하늘까지 닿는다고 했어."


가이우스가 끼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 귀신도 있다던데요? 밤에 숲속을 걸으면 나타나서 길을 잃게 만든다고..."


"맞다!" 세르기우스가 손뼉을 쳤다. "그리고 드루이드들은 미래를 본다고 주장하지. 새의 내장을 보거나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해석해서 말이야. 물론 전부 허튼소리지만, 무식한 야만인들은 그걸 믿는다고."


한 젊은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혹시 저희를 저주라도 걸었을까요?"


세르기우스가 큰 소리로 웃었다. "저주? 하하! 만약 그런 힘이 정말 있었다면, 오늘 우리한테 저렇게 간단히 당했겠나?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로마가 이기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옳다는 뜻이야. 신들도, 운명도, 모든 것이 우리 편이라고."


가이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위대한 황제 네로 폐하와 불멸의 로마가 있는데, 나무를 신으로 섬기는 놈들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세르기우스가 일어나서 모닥불 주위를 천천히 걸었다.


"로마는 법이다. 로마는 질서다. 로마는 문명이야. 우리는 야만인들에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는 거다. 오늘 우리가 한 일도 마찬가지야. 미신과 무지를 걷어내고 진리의 빛을 비춰준 것이지."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로마! 로마!"


세르기우스가 술잔을 들어올렸다. "황제 폐하와 로마의 영광을 위하여!"


"황제 폐하와 로마의 영광을 위하여!" 병사들이 일제히 따라 외쳤다.


가이우스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웃었다. "드루이드 놈들? 그냥 겁쟁이들이야! 마을 하나 불태우니까 도망갔잖아!"


병사들이 박장대소했다.


세르기우스도 평소보다 경계를 늦추고 있었다. "이 섬의 야만인들도 갈리아 놈들과 별반 다르지 않군. 결국 로마 앞에서는 다 똑같아."


파수병들마저 술잔을 기울이며 졸고 있었다. 승리의 도취감이 그들의 경계심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여전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술잔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루키우스가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마르쿠스의 눈에는 깊은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모닥불이 타닥거리며 불꽃을 하늘로 뿜어올렸다. 그 불꽃들이 춤추는 모습이 마치 낮에 타오른 마을의 화염과 닮아 있었다. 마르쿠스는 그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정말 이것이 문명을 전하는 길일까?'


밤바람이 불어와 모닥불을 흔들었다. 어둠 속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죽은 자들의 원혼이 부르는 소리 같았다.


세르기우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일부터는 더 깊숙이 들어가 본격적인 정찰을 시작한다. 드루이드들의 소굴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야 하거든. 푹 쉬도록 해!"


병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로 향했다. 모닥불만이 홀로 타오르며 밤을 지키고 있었다.


고요한 밤이었다. 너무나 고요했다.


마르쿠스만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새소리도, 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숲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첫 번째 파수병이 사라졌다. 그냥... 사라졌다. 한 순간 거기 있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없었다. 비명소리도 없었고, 투쟁 소리도 없었다. 단지 어둠이 그를 삼켜버린 것 같았다.


"마르쿠스! 파수병이 보이지 않는다!"


루키우스가 불안한 목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이 술에 취한 채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두 번째 파수병이 비명을 질렀다.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뭐가... 뭐가 일어나는 거야?" 가이우스가 도끼를 쥐며 중얼거렸다.


그때 숲 속에서 희미한 형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고, 마치 연기처럼 나무 사이를 스며들었다.


세르기우스가 횃불을 들어올렸다. "누가 거기 있나! 나와라!"


대답은 없었다. 대신 어둠 속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죽은 자의 원혼이 부르는 소리 같았다.


휘이이이익!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한 병사의 목에 꽂혔다. 그는 손으로 목을 감싸며 쓰러졌다.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공격이다!" 마르쿠스가 외쳤다.


하지만 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숲 자체가 살아서 공격하는 것 같았다. 나무 뒤에서, 바위 틈에서, 땅속에서 죽음이 스며 나왔다.


켈트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인간 같지 않았다. 자식과 아내를 잃은 남자들, 집을 잃은 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짐승의 광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얼굴과 몸에는 파란색 물감과 진흙을 발라 죽은 자처럼 보였고,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파란 악귀들 같았다.


그들은 하나하나 로마 병사들을 사냥했다. 늑대가 양을 사냥하듯이. 악귀가 산 자를 지옥으로 끌고 가듯이.


한 켈트 전사가 나무에서 뛰어내려 로마 병사를 덮쳤다. 그의 손톱이 길게 자라 있었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정말로 짐승이 된 것 같았다.


"아악!"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른 전사가 바위 뒤에서 나타나 창을 던졌다. 창이 한 병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는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방패벽을 만들어라!" 세르기우스가 외쳤다.


하지만 술에 취한 병사들은 제대로 진형을 갖출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켈트 전사들이 그들을 하나씩 사냥했다. 마치 어둠의 정령들이 산 자를 죽음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가이우스가 도끼를 휘두르며 맞서 싸웠다. "오라, 이 악귀들아!"


하지만 그의 도끼는 그림자를 벨 뿐이었다. 켈트 전사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야영지에는 지옥이 펼쳐졌다. 로마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들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다. 어느 새 50여 명의 군사가 채 10명도 안 남게 되었다. 세르기우스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결단을 내렸다.


"말을 타라! 본대에 알려야 한다!"


그는 자신의 말에 뛰어올라 숲을 향해 달렸다. 몇 명의 기병이 그를 따랐다. 켈트 전사들이 그림자처럼 뒤쫓았지만, 어둠 속에서 말들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이제 마르쿠스와 루키우스, 가이우스만이 등을 맞대고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었다. 켈트 전사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창끝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 끝이군." 마르쿠스가 죽음을 각오한 듯 말했다. 피투성이가 된 가이우스가 외쳤다. "로마 전사 답게 죽자!" 그 옆에선 부상을 입은 루키우스가 가쁜 숨을 내쉬며 헐떡 거리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하얀 머리의 노인이 나타났다. 브란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다가왔다. 켈트 전사들이 그를 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브란이 마르쿠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지혜와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빛이 있었다.


"저 자를 증인으로 삼는다."


브란이 켈트어로 말했다.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창끝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죽이지 마라. 네메톤(성역)으로 데려간다."


그들은 포로들을 이끌고 깊은 숲속으로 사라져 갔다. 야영지에는 시체들과 꺼져가는 모닥불만이 남았다. 모닥불이 점점 어두워지자 사방에서 시체를 노리는 날짐승들의 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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