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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간행(間行)

- 오수(午睡) 한 조각

by 김용기


운주사 간행(間行)


- 김용기



운주사 와불님은

소나무 그늘을 피해 누워 계시고

뾰족한 소나무 그늘은

송구스러워

몇 안 되는 바람을 흔들어 드렸다


운주사 스님들 중에

울지 않은 어머니 없었을 테고

둘러대고

서둘러 머리를 깎았을 테니

속세의 사연들

이제 파리똥만큼 흐릿해졌고

건드리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흐느낌 한 덩어리씩

품지 않은 스님이 있을까

처마마다 풍경소리는

죄를 알리는 명징한 소리

물 없는 허공에서 물고기가 내는

오도송이다


소용없는 짓

운주사 와불님은

백 번 천 번 허리를 굽혀도

부자 되고 병 낫고

운수 대통에 대하여

일절 말하는 법이 없는데

누워 졸고 계시기 때문은 아니다


와불님을 밟고 넘었다

주지스님이 빗자루 들고

쫓아오든 말든

넓적한 발자국 하나 크게 남기고

줄행랑을 쳤다

내 마음에도 찍힌 걸 알았을 때

오수(午睡)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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