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팔순 기념집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렇게 시작된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읊을 때마다, 시인은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묵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가장 많이 그렸던 꽃은 국화였고, 그 때마다 나는 아내를 생각했다.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고 끝맺음한 것으로 보아 찬 서리와 관계가 깊다. 그래서 문인화가들도 역시 국화를 좋아했던 것 같다.
중국 위나라 종회가 ‘국화부’에서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 1.동그란 꽃송이가 높다랗게 달린 것은 천국을 본뜬 것이요 2. 잡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황색은 땅의 빛깔이며 3. 일찍 심어 늦게 피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4.서리를 뚫고 꽃을 피우는 것은 굳세고 곧은 기상이요 5. 술잔에 꽃이 떠있음은 신선의 음식이다’라고 했다. 고귀하고 고결하며 성숙한 모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다.
11월이면 온 세상을 장식하는 국화 향기를 맡으면서, 팔순을 맞이하는 아내에게 국화 그림을 선물로 그렸다. ‘구원 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2:15,16)’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태신앙에서 팔순까지, 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도,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아내는 국화의 향기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겠는가? 외모가 예쁘지는 않아도 생활력이 강할 것 같다는 것이 첫선볼 때 어머니의 관상 평이었고, 또한 중매인도 “이쁘딘 않아요. 거저 마음씨 곱고 신앙 좋고 살림꾼일 뿐이디...”하며 생활력 강하다는 걸 강조했다. 그것이 零順位(영순위)가 되어 나는 永順(영순)이에게 장가들었다.
삼팔선을 넘어온 失鄕民(실향민)들은 남한에 와서 유대인처럼 억척 같이 생활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억척같은 여인을 ‘또순이’이라고 불렀다. 아닌게아니라 아내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역시 ‘또순’이다. 무서리가 내리면 아름답게 피어나는 국화다. 별 볼 일 없는 남편을 힘껏 내조하며 이만큼 알뜰하게 살림하고, 세 아들 딸 낳아 바르게 잘 길렀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도 믿음으로 기도로 말없이 잘 극복하며 굳굳하게 팔순 고개까지 넘어왔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며, 국화 향기보다 더 짙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여간 고맙지 않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