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팔순기념집
“엄마 팔순 때는 내가 춤을 추어야지...”
자녀들이 마련한 내 팔순 잔치 때, 이렇게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알고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궁궐 안에서도 잔치가 벌어지면, 임금님 앞에서 舞姬(무희)들이 춤을 추었지 않았나? 우리 집 여왕님 앞에서 신하가 춤을 추기로서니 크게 흉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무대가 마련되고 風樂(풍악)이 울려야 제격이지, 술도 없는 민숭민숭한 자리에서는 꼭두각시 춤만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림으로 代替(대체)하기로.
복지관에서 한국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지도 어언 십년이 되었다. 서당 개도 십년이면 吟風弄月(음풍농월)을 한다 했는데, 끼가 있어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춤인데 춤꾼만 못하랴. 복지관에서도 할미꽃 속에서 고추잠자리의 춤이 단연 돋보여, 해마다 발표일 때는 빠지지 않고, 홍일점이라 관객들의 인기도 높다. 아내는 이런 風流(풍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번 인사치레로 구경 왔을뿐 보나마나 졸지 않았을까? 그런데 팔순 잔치라고 자기 앞에서 춤을 추는 남편을 곱게 보랴.
둘러친 한국화 병풍 앞에, 하얀 도포 위로 남색 快子(쾌자)를 걸쳐 입은 閑良(한량). 젊은 꽃미남이다. 아무리 보아도 팔순 넘은 최영감은 아니다. 그러나 나도 往年(왕년)엔 젊은 미남이었다우. 늘 하던대로 福巾(복건)을 씌울까 했으나, 처음으로 갓을 씌웠다. 나이든 한량들은 한결같이 갓을 썼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蘭香(난향)이 풍기는 부채를 들고, 한 손은 넓은 소맷자락을 휘두른다. 장구․가야금․퉁소․해금 가락에 맞추어, 버선코를 번쩍 들어 보이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굿거리 장단이 잦은모리․휘모리로 바뀌면서 절정에 이른다.
어? 냉큼 아내를 보았더니 웃고 있다. 어이없는 失笑(실소)인지, 鼻笑(비소)인지, 입맛 떫을 때의 苦笑(고소)인지...그래도 팔순까지 건강하게 함께 살아준 영감님께 큰절은 못할망정 박수는 쳐줘야 하지 않나? 그림 속에 어디 자기가 있느냐고 따지면? 그건 그렇지. “얼씨구 좋다!” 그림을 보고라도 이렇게 추임새를 해줘야 춤꾼은 신이나는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으니... 自己陶醉(자기도취)에 빠진 그림 속의 한량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알아주거나 말거나 이렇게 춤을 추며 제멋에 겨워 젊게 사는 것이, 아내 사랑이라 여기면서 지금도 춤을 추고 있다. 이런 때 쓰는 말 “못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