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팔순기념집
약혼 시절 한 달 동안 밤마다 무지개 다리를 놓으며 편지를 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8년. 여보․당신 소리 한 번 못해보고 이렇게 살아왔다면, ‘사랑하는 아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네요. 사랑의 온도가 있다면 몇 도나 될까? 요즘 하도 사랑이라는 말을 헤프게 써서, 귀한 말 같지도 않구려. 송도 바위에 앉아 ‘장미 꽃 향기가 아닌 미역 냄새같이 살겠다’는 말을 혹시 기억하는지.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 말라.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확신하지 말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덴마크의 생활철학 자 ‘얀테의 법칙’ 10개 중에 있는 제1법칙이라오. ‘특별하지 않아서 행복해요’에서 따온 말인데, 팔순 고개를 넘어온 나의 생각을 콕 집어놓았구료.
팔순을 맞아 축하 편지 대신 이 그림을 드리오. 荷花游鴨圖(하화유압도)란 오리 그림인데, 여기서는 고니와 원앙새를 더 넣었다오. 잘 살펴보구려. 모두 뽀뽀를 하면서 하트를 만들고 있잖소? 특히 원앙새는 부부 琴瑟(금슬)이 좋다는 새라 하지않소? 새들이 어떻게 제 짝을 아는지 신기하기만 한데, 比翼鳥(비익조)는 암수 두 마리가 날개를 가지런히 맞대고 날아다니는 상상의 새라 한다오. 그런데 우리는 결혼식 이후 팔짱을 제대로 끼며 걸었던 적이 열 손가락 안에도 못 들었으니 비익조는 아니제?
도스토예프스키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男女七歲不同席(남녀칠세부동석)이란 교훈을 듣고 살아온 우리들은, 사랑의 고백이나 표현에 아주 서투른 편이지요. ‘각 방 쓰기가 현실적으로 가장 건강하게 부부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법이다. 더 잘 사랑하려면 떨어져서 자라.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일 수 있다.’ 소르본 대학교 사회학 교수 장 클로드 카우프만이 ‘각방 예찬’에서 한 말이라오. 당신도 종종 남들은 각 방을 쓴다는 말을 했잖소? 그러나 옛 어른들은 춥고 허전하니까 늙을수록 등이라도 맞대고 함께 자야 한다고 했다오. 각 방 생활을 하다가 남편 죽은 것도 몰랐노라고 후회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법한 말이지.
사랑한답시고 종종 안마를 해주는데, 송곳 같은 손가락으로 너무 세게 주물러서 오히려 아프다고 볼멘소리를 하니, 할 말이 없소. ‘아내 사랑 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하라’(엡5:28)는 말씀으로 마무리 짓겠소. 여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