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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 디너 크루즈

사랑을 위하여, 낭만을 위하여

by 바람처럼


파리의 센강을 따라 흐르는 배에 올랐다.

빛으로 반짝이는 강물 위, 오늘의‘디너 크루즈’가 준비되어 있다.

딸이 엄마를 위해 숨겨놓은 깜짝 이벤트였다


야경을 보는 척하며 앉아 있었지만,

정작 눈길을 둘 데는 많지 않았다.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상징으로, 제 자리를 지키며 빛났고

주변엔 달콤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다정한 연인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들의 분위기에

세상이 그냥 어질어질해졌다.


배안의 유일한 여. 여 홍일점 커플인 우리

저들 눈에도 우리가 커플로 보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여긴 파리, 자유로운 영혼의 도시니깐.


각자의 사랑에 취해 있는 그들은

우리를 ‘진짜 연인’이라 믿을지도 몰라.

ㅋㅋ 좀 심한가?

어쩌면 우리도 그 순간만큼은 진짜였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이는 맞잖아. ^^


잔잔한 음악, 부드럽고 그윽한 눈길들,

속삭이듯 오가는 말들 속에 스며드는 와인 한 잔.

도저히 이 달콤함에 취하지 않을 수 없는 밤.


맨날 지지고 볶다가, 하루쯤은

서로에게 다정한 표정 하나 선물해 줄 수 있는 날.

내일을 위한 작은 이벤트쯤이겠지.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어색함은 잠시,

그보다 먼저 찾아온 건 묘한 설렘.

맘껏 사랑에 빠진 커플들처럼

잔을 부딪치며 외쳤다.


"내일을 위하여~!"


그리고,

밤도 내일의 깜짝 선물을 조용히 숨겨두고 있었다.



디너 크루즈(심통버전)


센강 위, 그는 부딪쳤다

잔을 들고, 감정은 접고


에펠탑이 반짝였고 그녀는 웃었다

어느 쪽도 진심은 아니었다


배는 천천히 돌았고 대화는 빠르게 식었다


그들 사랑도 코스요리처럼

세 번째 접시쯤에서 지루해졌다


디저트 무렵

그녀는 사진을 찍었고 그는 계산서를 보았다

흔들리는 눈동자


센강은 말이 없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들을 부러워하는 나를 보며 딸이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서 나온 심통버전 시였다

"하긴 나중은 아무도 모르지."

에펠탑은 여전히 반짝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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