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41
인과응보, 사필귀정과 같은 말처럼 공허한 단어가 또 있을까. 세상은 모든 일을 수치화하여 그대로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한다고 해서 벌을 받는 건 아니고 그를 수치화하여 그만큼의 업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법을 어기는 건 다른 이야기이다. 천수를 누리고 산 독재자도 있고, 재앙으로 인해 빨리 세상을 떠나는 선인들도 있다. 이는 사람들의 희망이 반영된 단어다.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반영된 단어.
가족에게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뜯어간 사람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이고, 갑자기 잠수로 헤어지고 1주 만에 임신해서 군인과 결혼한 전 여자 친구도 행복하게 애를 키우며 살고 있을 것이고, 대학시절 바람 펴서 헤어진 못생긴 후배와 그 친구가 이후 내가 너무 집적거려서 짜증 난다는 소문을 학과에 퍼트려서 매장한 사실도 모두 잊은 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테 였다. 물론 최근에 헤어진 전 여자친구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용기가 없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잡으며 하고 있으며, 희망하던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언젠가 할 자살만을 꿈꾼다. 그래서 나는 나를 떠나가거나 버린 모두를 증오한다. 모든 일이 풀리지 않고 불행했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절망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옥에서 그 모습을 보고 싶다.
때때로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악을 수치화화여 얻어야 하는 불행을 모으고 모아 나에게 준 것이 아닐까? 나만 죽으면 그 불행은 사라지니까. 그러니 나는 더더욱 살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없어진다. 하고 싶었던 것, 생각했던 희망찬 미래는 잔혹한 현실의 벽과, 정신적 병인 우울증과, 점점 악화되고 있는 육체적 병으로 인해 불투명해졌고, 이런 내가 싫어서 아무에게도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웃으며 산다. 여행하며 총을 맞고 죽으면 그거 나름대로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