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읽기_내가 겪는 모든 일들은 필연이 아닐까?

삶의 모든 과정은 이유가 있는 것

by 주루주루

나는 천주교 신자다. 집안이 모두 천주교를 믿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내 발로 성당에 찾아가 6개월이란 교육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고 스스로 신자가 되었다. 내가 갑자기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한 이유는 우울증과 관련이 있었다. 지난한 과정 끝에 원하던 직장에 들어간 뒤, 격무로 인한 번아웃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과 허무감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었다. 정신과에 찾아가 약도 먹어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보았지만, 무언가 내 마음의 근본적 변화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종교를 가져보기로 했다. 하필 그것이 천주교였던 이유는 신자가 되는 과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나 불교는 교회나 절에 그저 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천주교는 신자가 되기 위해 교리 교육이란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당시 아무런 의욕도 없고, 허무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던 나는 무언가 새롭게 나를 채워줄 것이 필요했고, 내가 적극적으로 알아가야 하므로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천주교를 택했다.

신자가 되고 나서 한 1년 간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하고, 매주 미사를 나가고, 또 가끔 고해성사도 하면서 마음속 위안을 찾아가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마음속에 불편함이 생겼다. 바로 이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한번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자 성당에 가는 일이 불편해졌다. 미사시간에 하는 말들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고, 역사적으로 천주교가 자행해 왔던 모든 전쟁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왜?’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렇게 성당과 나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지금 나는 냉담자로 2년 여의 시간의 지내고 있다. 처음 성당을 찾게 했던 우울증도 원인이 되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이제는 거의 회복되었고, 요즘은 내가 원래 이렇게 행복을 자주 느끼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열흘 전쯤 남편과 수영장에 갔다가 나온 김에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 카페는 정기휴일이었고, 아쉬운 맘에 근처 카페를 찾아보던 중 근처 무량사라는 절에 있던 ‘그려려니’라는 카페 간판이 생각났다. 절에 있는 고즈넉한 찻집의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아 그날을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주차를 하고 카페에 들어서자 여성 손님 두 분이 계셨고 스님이 커피를 내리고 계셨다.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 밖에 없던 지라 두 여성 분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곧 스님께서 커피를 내오시고 함께 앉으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님과 속세인 네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와 남편은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자면 완전 I성향의 사람들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사실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이날의 구도는 평소라면 나와 남편이 매우 꺼리는 상황에 속한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매우 편했고, 무려 1시간 반 동안이나 즐겁게 대화를 했다. 나오면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도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이날의 상황은 평소의 우리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더 신기한 건 그날의 대화 이후 내 마음이 달라졌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회사를 퇴사하고, 나의 퇴사의 원인을 끝없이 마음속으로 추궁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 이미 마음이 편해진 상태긴 했지만, 그날 스님과의 대화는 나를 더 안도하게 했고,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대부분 소소한 대화들이었지만 그날 대화의 주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나의 마음은 나의 것, 너의 마음은 너의 것. 내가 다른 사람을 컨트롤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진다.

2. 삶에서 단 한순간도 즐겁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남들과 상관없이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내가 지금 하고픈 행동과 하고픈 말을 거리낌 없이 하며 살면 마음이 불편하거나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3. 즐겁게 산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지금을 고난으로 생각하고 견디며 하는 일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4. 삶의 모든 순간이 수양이다. 출가 전 은행원이었던 스님은 그 기간이 수양의 바탕이 되었다 하셨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고객을 대하는 그 현실 자체가 자기 수양이었기에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사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이 중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은 없다. 그러나 이 말들이 내게 와닿은 건 내가 겪었던 우울의 시간들 때문인 듯하다. 퇴사 후 내가 내린 결론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것도 스님을 통해 들으니 마음이 더 편안해진 것이다. 결국 그날의 대화는 나에게 잘 살고 있다는 위로였다.


그래서 지금 마음이 즐겁다. 오늘 현재가 즐거우니 걱정되는 일도 없다. 실은 며칠 전 계획했던 일을 수행하기 위한 시험에 낙방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자책하고 불안해했을 나인데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직은 내가 그 일을 할 준비가 덜 됐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어 잘됐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 한 끗 차이인 듯하다.

아마 나의 이 글이 너무나 뻔한 이야기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뻔한 데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성당에서 들었던 이야기도 그날 스님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뻔한 이야기를 모든 종교에서 똑같이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지금이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저 그 시간을 견디는데 집중하라. 그리고 빠져나온 후 그 상황을 복기하며 나에게 있는 진짜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고 나면 좀 더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진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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