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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스스로 인정해주자

논어 학이(學而) 편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by 주루주루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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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진 기본적 욕구 중에 ‘인정욕구’라는 것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에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리적인 욕구만 있는 ‘나’밖에 없는 세상에 살다가 시각과 청각이 또렷해지고 뇌가 발달해 가며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 속의 나를 의식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인정욕구를 가지게 된다. 인간이 사회적 인간이 되는 첫걸음이 바로 이 인정욕구이다.

아기가 태어나 가장 먼저 인식하고 자신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대상은 부모이다(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 자신과 더 가까운 관계의 사람에게 인정받길 바랄 것이다). 이 시기는 사람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 부모의 인정(즉 사랑)을 받고 있다 느끼지 못하게 되면 아기는, 아니 그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인정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충분히 사랑을 받으면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나를 사랑해 줄(이 말은 나쁜 짓을 할 때 혼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평생 믿게 되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하는 데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렇듯 이 시기 부모의 태도는 매우 중요한데, 잘못한 것을 혼내더라도 아이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며, 아이가 무언갈 잘해서 칭찬을 해주더라도 아이에게 그 잘 한 행동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주지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도 다른 사람의 인정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유아기를 보내진 못한 것 같다. 아니, 우리는 대부분 그런 유아기를 보내지 못했다. ‘경쟁’을 강조하는 교육, 나보다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그 말인즉슨 결국 내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마음은 아무 조건 없이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를 빼앗아가 버렸다. 결국 어떤 아이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잘 해내고자 집착하고, 어떤 아이는 잘 해내고자 하여도 잘 안되기에 일탈이란 방식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고자 한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 인정을 받을 다른 곳을 찾아 헤맨다. 그게 학교일 수도 있고, 회사일 수도 있고, 대중일 수도 있다.

인정받기 위한 삶의 문제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인스타에 포장된 삶을 올리는 경우나 학교나 회사에서 번아웃이 오는 경우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정을 갈구하는 삶의 현상일 뿐이다. 그 문제의 본질은 사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것에 있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평생을 남의 눈을 의식하며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 믿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현타가 오게 되는데, 그게 중년에 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바꿀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리 살고 죽을 때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한들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혹은 죽을 때까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런 경우는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이나 걱정해라.(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이 말은 논어를 읽으며 처음 내 폐부를 찌른 말이다. 항상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뭐든 잘 해내고 싶었던 나는 커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였고, 거기만 들어가면 행복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직장에 들어가면서 삶이 더욱 고달퍼졌고 결국 그렇게 갈망하던 직장을 버리고 나이 마흔에 무직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적에 나는 무슨 일이든 잘 해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래서 조금 힘에 부치는 일을 맡으면 조금 나누면서 하거나, 못한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러면 부족한 사람이 되는 줄 알고 그걸 끌어안고 혼자 끙끙거리며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사실 잘 몰랐다. 평생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았는데, 그것만 생각하고 산 내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어찌 알랴? 결국 그 불행을 끝내고자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사실 인정에 대한 갈망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삶의 방향을 모르기에 주변사람들도 나를 인정해 주거나 비난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이며,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하는지 파악되지 않는다. 그걸 알아야 어른이 되는데 인정욕구에 목마른 사람은 그것을 볼 수 없으니 어른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 말은 공자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일러준 말 같다. 이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막 결심한 나는 사실 마음은 신생아에 가깝다. 지금 나에게 부모는 나이다. 내가 나를 믿어주고 보듬어주고 어떤 일을 해도 사랑해주려 한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껏 혹 상처 주었을지 모르는 이들은 살펴주고, 앞으로 맺게 되는 관계는 현명하게 이끌어 나가 보고 싶다.

늦은 나이에 고전을 보니 깨닫는 게 많다. 그만큼 할 일도 많은 사십춘기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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