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감상
10년 전 쯤 이 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언니의 책장에 꽃힌 이 책을 만지작 거리며 읽을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왠지, 선뜻 읽을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읽어보지 않아도 읽고 난 뒷맛이 그리 좋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기에 매번 시도 할까 고민만 하다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다시 읽지 못한 <채식주의자>가 생각났다. 하지만 여전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먼저 보았다. 그리고도 1년이 흘러 이제야 용기를 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역시 찝찝한 뒷맛의 예감은 맞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은 쉽게 읽혔다. 한번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어졌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을 지나 나무불꽃까지 읽는데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책 읽기를 마친 날 이 책에서 작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한참을 생각했다. 이전에 읽었던 한강의 소설은 뚜렷한 주제를 갖고 있었기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건만 이건 참 난해했다. 평론가들의 말들을 찾아보았다.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 '채식을 통해 남성위주 사회에 저항한 페미니즘적 소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책을 읽은 날, 유난히 혼자 있는 공간이 무거웠다. 아래층 펍에 내려가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내용을 곱씹었다.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한 여자, 브레지어를 거부하고 가슴을 드러내는 그녀의 행동, 그녀의 몸에 지워지지 않은 몽고반점과 그로인해 욕망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형부, 동생과 남편의 관계를 알게 되며 삶과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언니.
이 세 주인공은 본래 평소 자신의 욕망을 잘 숨기고, 겉으론 평범하고 번듯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영혜의 어느 날의 꿈으로 인해 자신을 옥죄고 있던 사회적 규범이란 틀을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규범의 인식은 곧 원초적 자아를 들여다보게 했다. 영혜에게 그것은 '육식'으로 대변되는 폭력에의 순응이었다. 그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혜는 채식을 택하고 그러한 자신의 선택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자 동물적 삶을 벗어나 식물이 되는 방법으로 자신의 진짜 자아, 원초적 자아를 실현하려 한다.
영혜의 형부의 원초적 자아를 건드린 건 어느날 우연히 아내에게서 들은 처제의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에 대한 상상은 그를 휘몰아치는 욕망 속으로 던져 넣었다. 처제와 형부라는, 선을 넘어선 안되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그는 욕망을 실현할 방법으로 예술을 택한다. 하지만 그건 수단일 뿐 그가 진짜 원하는 건 영혜의 육체였다. 그렇다면 그의 원초적 자아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영혜의 육체를 가지기 위해 수단이 되었던 예술 안에 그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자신의 예술의 완성, 이로인해 이루게 될 사회적 명성, 극치의 에로틱한 환희의 실현 등. 이로인해 파멸을 겪는 그는 그래도 영혜보다는 사회적 규범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원초적 자아를 실현했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그 욕망에는 예술이란 가면이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혜의 언니 인혜는 겉으로 보기엔 가장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어쩌면 가장 멍들어 있다. 어릴적부터 반듯한 장녀로서 살아왔고,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가족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삶의 가치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삼고 살아간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앞선 두 주인공의 경우에서처럼 미쳤다고 판단되거나 패륜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반면 진짜 자신은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도 그것이 진짜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녀의 체념과 적응은 살아가는 방법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배제이다. 자신의 동생과 남편의 불륜, 그리고 그 동생이 정신병동에서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며 그녀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어렴풋이 엿본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사회적 자아를 놓아버리지 않는다. 어린 아들이라는, 자신을 사회적 틀 안에 존재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회적 자아라는 탈를 벗어버리는 것에 대한 세 가지의 인간 유형을 보여준다. 영혜는 어느 날 완전히 그 사회적 자아를 벗어버린 경우이고, 영혜의 형부는 일시적 일탈로서 경험하는 정도이며, 영혜의 언니인 인혜는 결국 벗어버리지 못하는 보통 사람의 경우이다.
나는 이 소설이 작가 한강의 인간의 심연, 원초적 자아가 무엇인지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 잘 갈무리된 사회적 자아를 벗고 원초적 자아의 욕망을 완전히 드러냈을 때 무슨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니 남성중심 사회의 페미니즘적 저항이니 하는 것들도 맞는 말일 것이다. 작가의 내면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에 대한 반항의식이 있었을 수 있으니까. 아니 중년의 한국 여성이라면 그런 것에 대한 무의식적 피해의식이 없을 수 없다.
아무튼 나의 채식주의자 읽기는 '잘 갈무리 된 사회적 자아라는 껍데기를 벗겨냄' 내지는 '원초적 자아 실현의 상상 실험'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