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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에 묻은 작은 점이 계속 신경 쓰이는 아이

통제와 허용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by 알쏭달쏭

오늘 아침 건강검진을 가야 해서 잔뜩 긴장을 했는지 6시 언저리부터 잠에서 깬 것 같다. 내가 깨면 보통 애들도 깨는데 둘째 티커부터 일단 쉬를 보게 해준 뒤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새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는 티커가 내가 샤워하는 도중 오줌마렵다고 하면 곤란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데 내가 '시간강박'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늦을까 봐 불안 초조해서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첫째 제리는 전날 새벽 기침을 하다 토를 두 번이나 해서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상태였다. 원래 아이들은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아플 때 예민도가 최상이 되는데 제리는 아픈 상황에 속했다.


예민 VS 예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발 빠르게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아침까지 먹이면 티커까지 언니 유치원차 탈 때 같이 나갈 수 있고, 나도 건강검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다.

갑자기 둘 다 동시에 똥이 마렵다고 했다. 제리는 거실화장실, 티커는 안방화장실에 들어갔다. 제리는 대변을 빨리 보는 편이고 티커는 좀 오래 걸리는데 오늘은 예외적으로 제리가 대변을 보기 힘들어했다. 백초시럽을 먹이고 따뜻한 물을 갖다 줬다. 양쪽 화장실을 오가며 배변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남편을 깨웠다. 불면증이라 새벽에야 간신히 잠든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애들을 동시에 대변처리까지 하기엔 내 능력 범위의 밖의 일이었다. 제리가 변을 보기 힘들어하며 울먹거렸다. 안아달라고 해서 안아줬는데도 결국 변보기를 실패했다. 제리는 기침도 하고 목에 가래도 껴있는 데다가 콧물이 코를 막아 숨쉬기도 어려운데 배까지 아파했다.


일단 둘 다 화장실에서 나왔으므로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그린 대로 8시엔 밥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30분 안에 애 둘을 영양제먹이고, 밥 먹고, 감기약 먹고, 옷 입고, 머리 묶이고, 양말신기고, 겉옷 입히고, 신발 신으면 등원 가능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제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바지에 작은 점이 얼룩져있었다. 물티슈를 빼서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워지지는 않았다


"엄마 이거 지우고 싶어."


"제리야 그냥 작은 점일 뿐이야. 오늘은 엄마가 너희 둘을 등원시키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야 돼서 지체할 시간이 없어. 얼른 숟가락 들고 밥 먹자."


애아빠는 열심히 아이들 밥을 먹이려고 도와주었고, 잠도 못 잔 남편을 깨운 게 미안해서 그것만 도와주고 들어가라고 하던 참이었다. 제리는 계속해서 물티슈로 바지의 점을 닦고 있었고 지워지지 않자 표정이 시무룩해지며 울먹거렸다.


"이 검은색이 안 지워져 엄마."

"그냥 바지에 작은 얼룩이 묻었을 뿐이야. 신경 쓰지 마. 얼른 밥부터 먹자. "

제리는 계속 바지에 묻은 작은 점이 신경 쓰였는지 밥 먹는 것보다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자 8시 30분! 나가야 할 시간에 갑자기 바지를 갈아입겠다고 했다.


"엄마 나 바지 갈아입고 싶어. 치마 입을래. 이 바지 싫어."


"이게 뭔데 그렇게 신경을 써! 신경 좀 쓰지 말랬지!"

결국 화를 또 내고야 말았다. 다정함도 마음의 여유와 체력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애를 키우려면 얼마나 큰 그릇에 강철체력이어야 하는지 상상도 안된다.


그냥 제리는 그런 사람인 건데 내가 왜 그런 사람이냐고 묻는다. 예민하지 말라고 예민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닌데 나도 마음이 답답했다. 알면서도 화가 난다.


원래 유치원차는 40분에 오지만 신발 신는데도 '이거 신겠다. 저거 신겠다.' 하며 실랑이가 벌어지고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등 변수가 있기 때문에 10분 전에 나가려고 노력한다. 3분 안에 바지만 갈아입히면 등원은 가능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제리랑 옥신각신 하기보다 그냥 바지를 갈아입히기로 결정했다. 황급히 바지를 갈아입히고 요새 꽂힌 공주치마까지 입혔다. 그러니까 제리는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밝아졌다. 춥다고 안아달라고 해서 18kg의 제리를 번쩍 안아줬다.

등원전쟁이다. 내 머릿속에서 시간을 보며 이쯤이면 딱 나갈 수 있겠다고 촘촘히 계획을 세우더라도 늘 변수가 생기는 게 아이 등원이다.

언제쯤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괜찮아'라는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육아를 하며 나와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게 정말이지 어렵다는 걸 알았고, 그걸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느 정도는 통제를 해야 하고,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하는지,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감이 잘 안 온다. 아이의 기질마다 훈육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질서와 규범이 일관되게 적용될 것이라 더 어렵다.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울더라도 그대로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바지만 빨리 갈아입히면 저렇게 편안해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갈아입히는 게 맞는지 매사가 선택의 연속이다.


나보다 좀 더 불편한 게 많고 예민한 아이를 키울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해?'라는 생각에 단순히 그만 신경 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리가 바지에 묻은 게 많이 신경 쓰였구나? 지금 시간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줄래? 빨리 해결하고 유치원차 타러 가자."


라고 했다면 제리도 징징대고 울먹이기 전에 해결책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옆에서 애는 이렇게 키우는 거라고 코치 좀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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