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1
너는 혼자다* 나도 혼자다
네 모습은 내 모습이다 네가 밥을 먹을 땐 밥을 먹고 네가 잠을 잘 땐 잠을 잔다
나는 너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잔가지를 줍고 잔가지를 태운다 피어오르는 불꽃 앞에서 그저 앉았다 일어선다 너는 아주 긴 글을 읽다가 아주 긴 편지를 쓴다 너는 쓰면서 수천수만의 문장으로 늘어난다 너는 강과 이어지고 나는 새벽안개와 이어진다
밑줄 그은 손목에서 밑줄 그은 발목으로 흘러내리는 밤 구겨진 손으로 더듬어 보는 물결 내가 읊고 네가 읊은 바람이 분다 조금 만 더 보려 했다면 보였을 조금만 더 들으려 했다면 들렸을 이야기가 흐르고
2.
네가 보는 밤이 있고 내가 보는 밤이 있다 나는 네가 보는 밤에 있고 너는 내가 보는 밤에 있다
너는 고통이고 나는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이다 너는 마지막 말을 찾기 위해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불을 밝히지만 나는, 너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네 앞에 지고 있는 으아리를 본다 나는 묻는다 너는 대답하지 않는다 너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나는 너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시작하기 전에 끝나 버린 우리를 홀로 지속한다
어떤 날 어떤 모퉁이 어떤 정원에서 너로부터 잊혀져 가는 벤치에 앉아 더는 아프지 않는 비를 맞는다
나는 그저 울고 너는 그저 흐른다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