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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파파 Sep 15. 2023

아빠의 자책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순간

2022. 12. 5. 멍하니 창밖을 보는 너의 표정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너의 모습들이 어쩌면 너를 통해 보는 나의 모습은 아닐까.
“육아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인 걸 확인하게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끝을 내가 본다. - 김나영 님의 인스타그램 中 -


이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좋아요’를 백번은 누르고 싶었다. 마치 나의 명치 깊숙한 부분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격하게 공감이 되기도 했다.


인간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남에 비례하여 서로의 호감도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2023년 1월의 겨울은 ‘아이와 나’ 상식과는 달리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여 서로의 끝을 마주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도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날의 차가운 온도.


동생이 태어나고 한 달 무렵 살고 있던 집도 이사를 하며 첫째가 어린이집을 잠깐 쉬게 되었고 우리 네 식구는 24시간 온전히 함께해야 했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이 끝을 향해 달릴 무렵 결국에 나는 이성의 끈을 잠시 놓고 말았다.


MBTI 검사에서 한 번도 다른 유형이 나온 적 없는 극 T형인 나는 늘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였고 육아에서도 나름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이에 더해 때론 아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마저 이성적 판단으로 가능할 만큼 내공이 쌓였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침부터 무엇하나 생각처럼 되는 것이 없었다. 집안 살림부터 식사준비, 청소와 육아까지 왠지 모르게 뭔가 계속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는 날 T와 J 성향을 함께 가진 나는 예민할 대로 예민해졌고, 첫째가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가슴에 참을 인을 새겨가며 몇 번의 경고를 날렸지만 돌아온 것은 짜증과 고집부리기였고, 결국 나는 아이에게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아직 만으로 4살도 안 된 아이에게 그렇게 소리를 쳤던 것이다. 당연히 아이는 나갈 리가 없었고 오히려 더 크게 울고 짜증을 부렸다. 나는 힘으로 아이를 안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이와 나 모두 아무것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차가운 현관 앞 복도에 마주 섰다. 


아이의 표정에서 어느덧 짜증은 사라지고 놀람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만 3년을 살아오며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아빠의 분노와 어른의 힘에 강제로 굴복한 자신, 그리고 차디찬 겨울 집 밖으로 들려 나와 문 밖에 멀뚱하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미처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밀어닥친 것이다. 어떤 예고도 없이. 


나는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슬며시 타고 오르자 비로소 이성을 추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이미 벌어진 이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그나마 아이의 기억에 최악의 상황으로 남지 않을까 오로지 그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래, 그냥 솔직해지자.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감정은 느낄 수 있도록 잘 설명해보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이의 눈에서는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눈은 이미 붉게 달아올랐다. 아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훌쩍임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 때쯤 아이를 안고 먼저 아이의 속상함을 어루만지고 잘못한 부분을 사과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최대한 진심을 담아 전했다. 아이는 사과를 받아 주었고 자기도 아빠와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치 강력한 백신을 맞은 것처럼 그렇게 한 번 크게 앓고 난 뒤에는 지금까지 그때만큼 이성을 놓은 적은 없다. 물론 자잘한 마찰이야 늘 있는 일상이라고 쳐도 말이다. 


공감과 이해의 육아, 사랑과 보듬의 육아가 수학의 정석처럼 모든 육아에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이에게 분노하고 부모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죄악이 돼버린 요즘에 부모는 자신의 분노 앞에 죄인이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좌절한다. 


나는 요즘 그럴 때마다 가수 션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린다. 

“자신이 대접받으려고 아내를 하녀 취급하지 마세요. 아내가 공주가 되어야 당신이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죄인 취급하지 마세요. 내가 죄인이 되는 순간 내 자식들은 죄인의 자식이 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그 실수에서 배움을 얻고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그만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누구보다 내 자녀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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